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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종사 도전기

[ep.12] Short Field Landing (feat. 가타카) 좋아하는 영화 중에 SF영화 '가타카'(GATACA,1997년 작)가 있다. 에단 호크(빈센트 역)가 열연한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우리 인생에서 '재능'이란 과연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스포일러 주의. 영화 줄거리와 결말이 있습니다. 가타카의 영화 줄거리는 이렇다. 유전자 공학이 발달한 미래의 사람들은 우월한 유전자의 조합으로 태어날 수 있다. 하지만 주인공 빈센트는 유전자 공학의 도움 없이 자연적으로 태어난 사람이었다. 그는 신체적, 정신적, 지적으로 가장 우수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우주 비행사'가 되기를 꿈꾸지만, 어떤 시험이나 면접도 붙지 못한다. 결국 그는 좋은 유전자를 가진 전 수영 선수 '제롬'으로 신분 세탁을 하여 완벽히 다른 사람인 것처럼 하고 우주 비행사의 혹독한 .. 더보기
[ep.11] 조작 우리 비행 훈련생들은 훈련이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매주 월요일에 회사에 보고해야 했다. 반장은 훈련생들이 한 주간 훈련 진도와 비행시간이 어떤지 보고서를 작성해서 보고했다. 그리고 매주 운항훈련팀장에게 전화를 드려야 했다. 우리 기수의 반장은 나와 같은 숙소에 살고 있는 문정호였다. 문정호는 동기들 중에 나이가 많은 편에 속했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것은 아니고 한두살 터울이긴 했지만. 게다가 빠른 년생이라 실제로는 몇 개월 차이가 나지도 않았다. IT 계열 기업을 다니다 이직을 했다고 본인을 소개했지만 알고 보니 타 항공사에서 정비사로 일하다가 이직을 한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문정호가 이야기한 본인의 신상 정보 같은 내용이 가끔 거짓일 때가 있었다. 출신 학교라던지, 빠른 년생이라던지 하는 정보들이 약.. 더보기
[ep.10] Progress check 1 자가용 조종사 과정(PPL)의 첫 번째 중간시험인 progress check 1 이 다가왔다. 그간 비행교육을 받으면서 절차는 그나마 좀 익숙해졌는데 역시나 문제는 착륙, Landing이었다. 안전하게 착륙을 하지 못하면 progress check 1에서 통과하지 못하고 solo 비행도 나갈 수 없다. checker는 선임 비행교관 중 한 명인 왈리(Walley)였다. 왈리는 흰머리에 흰 수염을 기른 노신사 같은 외모에 원리 원칙과 절차를 중시하는 스타일의 교관이었다. 왈리와 지식 심사(knowledge check)를 받고 비행 심사를 받으러 나갔다. 정말 긴장되고 떨렸다. progress check 1 은 비행학교가 있는 디어밸리 공항 근처에 글렌데일 공항(Glendale municipal airpor.. 더보기
[ep.9] 떠나는 사람, 남는 사람 PPL 교육과정 초기에 교육 일정은 단조로웠다. 아침에 비행교육을 받고, 오후에 그라운드 스쿨을 받은 후에 집으로 돌아오는 것의 반복이었다. 저녁이 되면 동기들끼리 모여 술 한잔씩 하면서 저마다의 고충을 이야기하곤 했다. 숙소 중에 가장 큰 집이었던 우리 집에서 자주 모였다. 비행 교육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나뿐만은 아니었다. 비행을 잘하건 못하건 각자 힘든 점들이 있었다. 비행교육도 힘들었지만 비행 외적으로도, 교관과 스타일이 안 맞아서 고생하기도 하고 편조끼리 사이가 안 좋아서 고생하기도 했다. 나는 술을 잘 먹지 못하는데도 매일 술을 먹었다. 성격 좋고 사교성이 좋은 동기 이승훈(가명)과 친해진 것도 이때쯤이다. 이승훈은 국내 명문대에서 독일어를 전공한 친구였는데, 187cm 정도로 키가 크고 운동.. 더보기
[ep.8] 첫 비행 (2) 주어진 재능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분야에 따라 재능이 얼마나 중요한가도 천차만별이다. 특히 예술이나 스포츠 영역에서는 재능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비행도 이런 재능이 중요한 영역 중 하나다. 특히 초기 비행교육 과정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많은 조종사들이 말하기를 "시간이 지나고 비행기를 많이 타보면 누구나 잘한다."라고 말한다.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한다. 하지만 문제는 제한된 시간과 비용 내에서 비행기 조종에 익숙해 져야 한다는 점이다. 비행교육은 한시간에 400불가량의 만만찮은 교육비가 든다. 때문에 웬만해서는 비행기를 원하는 만큼 많이 탈 수 없다. 추가로 나는 회사에 소속된 교육생 신분이었기 때문에 정해진 기간 내에 각 단계들을 통과해야 했다. 그래서 비행 초기에는 재능이.. 더보기
[ep.7] 첫 비행 (1) 첫 순간은 언제나 특별하다. '처음'이라는 말에는 설렘과 긴장감이 있다. 지금은 10여 년의 민항사 조종사의 경험으로 비행시간이 수천 시간이 되었지만 내게도 처음 비행을 했던 순간이 있었다. 첫 비행의 기억이 설레고 즐거웠냐 하면 사실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지금은 희미해져 버려 첫 비행을 회상하자면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다. 단편적인 기억들이 떠오르는데 그마저도 첫 비행 때의 기억인지 그 후의 비행교육을 받던 기억들이 섞여버린 것인지 확실치 않다.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내가 정신을 놓고 있는 사이에 시간이 휙 지나가 버렸던 것은 기억이 난다. 여유롭게 주변 광경을 보며 경치를 즐기고 교관과 간간히 잡담을 나누고 이런 겨를은 없었다. 말 그대로 쏜살같이 시간이 지나갔고 영혼이 가출한 .. 더보기
[ep.6] 비행학교 애리조나에 도착한 것은 늦은 밤이었다. 비행학교에서 행정업무를 맡고 있는 제인(Jane)이 우리를 픽업해 주기 위해 나와있었다. 미국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유명한 프랜차이즈 인 앤 아웃 버거에 가서 햄버거도 사주었다. 그 후 그녀는 우리를 숙소로 태워주었다. 숙소에서 간단한 향후 일정들을 설명해 주고 돌아갔다. 숙소는 비행학교에서 정해주는 아파트단지에 렌트를 해서 마련했다. 물론 렌트비는 교육비에 포함되어 있었다. 편조들끼리 같은 숙소를 사용했는데, 무조건 2인 1실은 아니고 큰 집의 경우에는 4인 1실도 있었다. 내가 살 집에는 편조인 최상훈을 포함해서 내가 편조를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던 윤성범, 그리고 문정호 이렇게 4인이 같은 집을 배정받았다. 윤성범과 문정호는 우리 동기 중에 나이가 가장 많은 형들.. 더보기
[ep.5] 출국 선배들과의 만남 미국 출국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선배들이 귀국했다. 1년 먼저 비행 교육을 받은 선배들이 돌아온 것이다. 선배들은 우리에게 비행교육과 미국 생활에 대해서 생생한 정보들을 들려주었다. 비행교육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학교의 분위기는 어떤지, 교관들은 어떤 사람들이 있으며 좋은 교관, 나쁜 교관은 어떤 사람들인지, 미국 생활은 어떻게 했는지 등등을 말해주었다. 비행 교육을 갓 마치고 온 선배들이라 여유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불안감과 긴장감들도 함께 보였다. 그 선배들 동기 중에 미국 비행훈련의 막바지에서 낙오한 선배가 있어서 그래 보였던 것 같다. 같이 동거 동락하며 1년여 기간을 함께했던 동료가 갑자기 짐을 싸고 돌아간 것이다. 회사라는 조직의 시스템은 여지나 융통성이 없다. 부탁하고 사.. 더보기
[ep.4]편조 미국으로 본격적인 비행교육을 받으러 가기 전에 한 달여 기간 동안 '그라운드' 교육을 받았다. 그라운드 교육이란 비행 이론, 기상, 관제용어 같은 것들을 배우는 것을 말한다. 공학을 전공한지라 비행 이론 같은 것들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실제로 비행을 하면서 이런 것들을 적용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당시 나는 자동차 운전도 미숙한 장농면허 소지자였다. 그리고 토종 한국인으로서 영어는 학교에서 글로 배운 것들이 다였다. 그런 내게 한 달 후 미국으로 가서 비행기 조종법을 영어로 배워야 한다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거기에 비행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큰 빚을 진 실업자가 되는 상황까지 덤으로 말이다. 성격이 대범하고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래, 까짓것 부딪혀 보자!' 하며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