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L 교육과정 초기에 교육 일정은 단조로웠다. 아침에 비행교육을 받고, 오후에 그라운드 스쿨을 받은 후에 집으로 돌아오는 것의 반복이었다. 저녁이 되면 동기들끼리 모여 술 한잔씩 하면서 저마다의 고충을 이야기하곤 했다. 숙소 중에 가장 큰 집이었던 우리 집에서 자주 모였다. 비행 교육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나뿐만은 아니었다. 비행을 잘하건 못하건 각자 힘든 점들이 있었다. 비행교육도 힘들었지만 비행 외적으로도, 교관과 스타일이 안 맞아서 고생하기도 하고 편조끼리 사이가 안 좋아서 고생하기도 했다. 나는 술을 잘 먹지 못하는데도 매일 술을 먹었다.
성격 좋고 사교성이 좋은 동기 이승훈(가명)과 친해진 것도 이때쯤이다. 이승훈은 국내 명문대에서 독일어를 전공한 친구였는데, 187cm 정도로 키가 크고 운동을 잘했다. 성격도 긍정적이고 유머러스해서 함께 이야기하면 즐거웠다. 동기들 대부분이 이 친구라면 당연히 비행을 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비행교육이 시작되자 이승훈은 교육에 어려움을 겪는 듯했다. 비행교육 때문에 힘들다는 공감대가 있어서인지 나와 이승훈은 서로 이야기도 많이 하고 친해졌다. 반면에 편조였던 최상훈은 너무 완벽하고 인간미가 없게 느껴졌다. 내 자격지심 때문이겠지만 같이 비행을 하면 할수록 나와 비교가 되고 위축이 되었다. 최상훈은 최상훈 대로 나 때문에 조금씩 더뎌지는 교육 진도에 답답해했다. 서로 악의를 가지고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날이 갈수록 최상훈과는 서먹해졌다. 그럴수록 나는 이승훈과 친해졌고 이승훈의 집에 놀러 가서 밥도 해 먹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
이승훈은 고민이 많았다. 비행을 하면 할수록 이 길이 맞는걸까하는 회의감이 들었고 비행에 흥미도 잃어갔던 것이다. 그러던 중 이승훈이 내게 진지하게 물었다.
"우리 한국돌아갈래?"
나도 같은 고민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고 있었지만 이승훈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지는 몰랐기 때문에 조금 놀랐다. 한편으로는 나만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은 아니구나 싶어 조금 위로가 되기도 했다.
그만둘 거면 빨리 그만두는 것이 낫다. 교육비도 얼마 안 들고, 아직 나이도 어리니 새 직장에 취업하기도 수월하다. 그래도 나는 이런 식으로 그만두기는 싫었다. 나는 비행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지만 싫지는 않았다. 비행이 하고 싶었고 또, 잘하고 싶었다. 나는 승훈이에게 첫 번째 Progress check을 받아보고 그 후에 어찌 될지 결정해보자고 말했다.
떠나는 사람
하지만 며칠 후 이승훈은 짐을 쌌다. 학교의 Chief Pilot에게 그만두겠다고 통보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으로 가기 전 이승훈은 내게 "너는 훈련을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는 말을 하고 떠났다. 훗 날 전해 들은 바로는 한국에서 운항훈련팀장이 사무직으로 전환해서 일을 해보는 것은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지만 거절한 채 회사를 퇴사했다고 한다.
이승훈의 훈련 중단 결정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이승훈의 편조였던 오영근(가명)은 졸지에 혼자 교육을 받는 신세가 되었다. 오영근이 말하기를 이승훈이 비행교육에 간간히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비행을 곧 잘했다고 했다. 아마도 비행실력은 나보다 훨씬 나았을 것이다.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는 걸까?
비행 교육을 그만둘까를 고민하고 생각만 하는 것과, 실제로 주변의 친구가 그만두고 떠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은 체감상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승훈이 떠났던 그날 밤,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어떻게든 progress check 1 까지만 버텨보자. 거기서 만약 떨어지게 된다면 그때는 그만하자. 이렇게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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