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재능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분야에 따라 재능이 얼마나 중요한가도 천차만별이다. 특히 예술이나 스포츠 영역에서는 재능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비행도 이런 재능이 중요한 영역 중 하나다. 특히 초기 비행교육 과정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많은 조종사들이 말하기를 "시간이 지나고 비행기를 많이 타보면 누구나 잘한다."라고 말한다.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한다. 하지만 문제는 제한된 시간과 비용 내에서 비행기 조종에 익숙해 져야 한다는 점이다. 비행교육은 한시간에 400불가량의 만만찮은 교육비가 든다. 때문에 웬만해서는 비행기를 원하는 만큼 많이 탈 수 없다. 추가로 나는 회사에 소속된 교육생 신분이었기 때문에 정해진 기간 내에 각 단계들을 통과해야 했다. 그래서 비행 초기에는 재능이 정말 중요한 요소다. 이와 관련해서는 내가 전에 포스팅한 글에 추가적으로 더 자세히 적어두었다.
뽕빠일럿과 어리바리
비행교육 파트너였던 최상훈은 뽕빠일럿이었다. 기장님들한테 배운 말인데 비행 재능이 뛰어난 사람을 뽕빠일럿(Born Pilot : 타고난 조종사)이라고 불렀다. 최상훈은 피트의 설명을 침착하게 들으면서 비행기를 지상 운전(taxi)하여 활주로에 정대시키고 가볍게 이륙했다. 비행기를 몰고 공항 주변의 Practice Area로 가서 기동(maneuver)을 몇 번 연습하고 디어밸리 공항으로 다시 돌아왔다. 피트가 착륙 시범을 보여주며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고 가르쳐 주었다. 최상훈은 피트의 착륙 시범을 주의 깊게 보더니 조금은 거칠지만 착륙을 해서 비행기를 활주로에 멈추어 세웠다. 피트는 내심 놀라는 모습이었다. 뒤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떤 상황인지 잘 파악이 안 되었다. 사람의 긍정 회로가 발동했다. '원래 비행이라는 게 몇 번 해보면 할 수 있는 쉬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싶기도 했다. 아니면 최상훈이 정말 몇 안 되는 재능이 뛰어난 사람일지도 모르고 말이다. 제발 첫 번째이길 바랐다. 나도 잘은 못하더라도 비슷하게 할 수 있기를 바랬다. 하지만 불길한 예감은 늘 맞는 편이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뒤에서 보기에도 설명을 다 따라가기 어려웠는데 조종석에 앉으니 머리가 하얘졌다. 피트가 영어로 말하는 것을 반은 이해를 했을까? 내가 조종을 하는 건지 피트가 조종을 하는건지 우여곡절 끝에 시동을 걸고 활주로까지 왔다. 이륙을 해야 했다. 쓰로틀(Throttle) 레버를 풀로 집어넣자 프로펠러가 아주 강하게 돌면서 비행기가 떨렸다. 발로 밟고 있던 브레이크 레버를 떼자 비행기가 가속하기 시작했다. 이륙 속도에 도달하자 요크를 살며시 잡아당겼다. 비행기가 떴다. 내가 처음으로 이륙을 한 것이다.
이륙은 그래도 어려운 조작은 아니었다. 이륙 후에는 비행기가 프로펠러의 회전에 의해 틀어지는 효과가 있어서 이를 막아주어야 하므로 오른쪽 발로 러더(Rudder)를 차 줘야 했다. 그러면서 상승 속도를 맞추기 위해 기수를 조절해 주어야 했다.
피트는 잘 이해도 못하고 어리바리한 내게 조금씩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는 모양이었다. 목소리가 커지고 한숨을 쉬기도 했다. 사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비행 교육을 받은 혈기왕성한 20대 초반의 다혈질 피트에게 인내심을 바라는 것은 무리였다. 게다가 비행은 작은 조작들이 안전과 직결된다. 평정심을 유지한 채 실수들을 보고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착륙은 커녕 고도를 유지한 채 비행기를 안정시키는 것도 쉽지 않았다. '트림(trim)'이라는 장치가 있다. 항공기가 수평비행 상태로 안정이 돼면 조종간 yoke를 쥔 팔에 힘이 안들어가도록 조절을 해 주는 장치다. 트림을 잘 맞춰두면 팔에 힘이 안들어가고 신경쓸 일이 적어진다. 그런데 비행을 처음 해보니 트림을 어떻게 조작하는지도 모르겠고 오히려 반대방향으로 트림을 맞춰 팔에 힘이 더 들어가게 되어 버렸다. 팔에 힘이 조금이라도 빠지면 비행기의 고도가 떨어졌다. 팔에 힘으로 비행기 고도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 팔에 힘이 들어갈수록 집중력은 떨어졌다. 피트의 언성은 점점 더 높아가고... 트림의 사용법에 대해 피트의 설명은 아예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소음이 되어버렸다.
"I have control."
비행을 조금 더 하다가 급기야 피트가 control을 가져갔다. 그리고 착륙을 해서 비행기를 주기장에 댔다. 조금 누그러진 말로 내게 위로를 해주었다. 처음이라 누구나 잘할 수는 없다고.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고. 별로 위로는 되지 않았다. 최상훈은 처음인데도 그렇게 잘했는데... 주섬주섬 비행 용품들을 챙겨 가방을 들고 비행기를 내렸다. 얼굴에는 헤드셋 자국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익숙지 않은 헤드셋을 너무 꽉 끼게 썼는지 머리가 아팠다. 옷은 땀으로 젖어서 축축했다. 다리는 후들후들 떨렸다. 이제 첫 비행을 했을 뿐인데... 정말 막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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