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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종사 도전기/자가용조종사(PPL)

[ep.12] Short Field Landing (feat. 가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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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타카 GATACA , 1997년작

좋아하는 영화 중에 SF영화 '가타카'(GATACA,1997년 작)가 있다. 에단 호크(빈센트 역)가 열연한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우리 인생에서 '재능'이란 과연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스포일러 주의.

영화 줄거리와 결말이 있습니다.

가타카의 영화 줄거리는 이렇다. 유전자 공학이 발달한 미래의 사람들은 우월한 유전자의 조합으로 태어날 수 있다. 하지만 주인공 빈센트는 유전자 공학의 도움 없이 자연적으로 태어난 사람이었다. 그는 신체적, 정신적, 지적으로 가장 우수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우주 비행사'가 되기를 꿈꾸지만, 어떤 시험이나 면접도 붙지 못한다. 결국 그는 좋은 유전자를 가진 전 수영 선수 '제롬'으로 신분 세탁을 하여 완벽히 다른 사람인 것처럼 하고 우주 비행사의 혹독한 훈련을 통과한다. 유전자의 한계를 정신력으로 극복한 것이다. 빈센트는 마침내 꿈에 그리던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향해 날아가며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영화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주인공 빈센트가 친동생과 바다 수영을 하는 장면이다. 두 사람은 깜깜한 밤바다를 쉬지않고 헤엄쳐 더 멀리 가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을 했다. 먼저 겁을 먹고 돌아가면 지는 것이다. 동생은 유전자 조합으로 태어나 빈센트보다 신체조건과 지능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자신만만하게 헤엄을 치던 동생은 어느 순간 겁이 나기 시작했다. 쉽게 지쳐 포기할 줄 알았던 형이 포기할 생각이 없는 듯 무섭게 바싹 따라붙었다. 심리적으로 쫓기던 동생은 결국 게임에서 지고 말았다. 동생이 빈센트에게 화가 나서 물었다.

"어떻게 열등한 유전자인 형이 우월한 유전자인 나를 이길 수 있지?"

빈센트가 대답했다.

"난 되돌아 갈 힘을 남겨두지 않아서 널 이기는 거야."
(This is how I did it. I never saved anything for the swim back.)

Short field landing

자가용 면장을 준비하며 가타카라는 영화는 내게 큰 힘이 되었다. 빈센트처럼 재능도 부족하고 상황도 좋지 않았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견디어 내는 것 밖에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progress check에서 떨어지고 솔로비행도 늦었던 것은 되돌아갈 생각을 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결국 모든 것은 유전자와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문제였던 것이다. 이제는 너무 많이 왔다. 돌아갈 힘을 남겨놓을 만큼 만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사력을 다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나서 운이 좋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했다.

미국에서 비행훈련을 받은 지 벌써 3개월이 흘렀다. 솔로비행을 마쳤고, 지도를 보고 먼 비행장을 다니는 크로스컨트리(cross country)도 배우고, soft field take-off/ landing , short field take-off / landing 도 배웠다. 자가용 조종사가 되기 위한 체크 비행(check ride)에서는 이런 기동들을 실수 없이 잘 마쳐야 했다. 이전에는 착륙 자체가 문제였다면, 자가용 조종사 면장을 따기 위한 최종 시험에서는 short field landing 이 관건이었다.

short field take-off와 short field landing 은 말 그대로 short field, 즉 짧은 활주로에서 이착륙을 하는 기술을 말한다. 특히 short field landing은 조종사가 착륙지점에 정확히 착지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평가요소였다. 평가에서는 활주로의 에이밍 포인트 Aiming point에 정확히 착지해야 합격이었다.

Aiming point란, 조종사가 활주로를 육안으로 확인하여 시각적으로 착륙을 위한 참조를 하는 곳을 말한다. 미국 항공법인 FAA 기준으로는 활주로 길이에 관계없이 1000ft에 위치하고 있어서 one thousand feet marker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ICAO 기준으로는 활주로의 길이에 따라 aiming point의 위치가 달라진다.

디어밸리 공항의 7R 활주로의 aiming point. (출처 : 구글어스)

정확한 위치에 착륙을 하는 것이 관건인데, 특히 짧은 활주로를 가정하고 착륙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aiming point 이전에 착지를 하게 되면 가차 없이 탈락이다. 먼저 훈련을 받은 선배들에게 노하우를 배운 바로는 활주로 센터라인을 기준으로 2번째 센터라인에서 파워를 빼고(idle) 착지를 시작하면 대략 저 위치에서 착지를 하게 된다고 가르쳐 주었다.

파트너였던 최상훈은 역시나 감각이 달랐다. 조금 어려움이 있었지만 aiming point에 착륙하기를 몇 번 성공하더니 감을 잡은 듯 그 후부터는 백발백중이었다. 그러자 교관 피트가 착륙지점을 임의로 변경을 하며 숫자 7, 또는 대문자 R에 착지를 해보라고 했다. 최상훈은 거짓말처럼 목표지점에 잘 내렸다. 마치 가타카 영화에서 우월한 유전자의 소유자인 동생처럼. 최상훈의 비행을 백싯에서 보고 있자면 가타카의 주인공의 심정을 알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aiming point에 내리기도 쉽지 않았다. 솔로비행을 하고 이착륙 touch and go 연습을 많이 했지만 내 착륙 솜씨는 많이 발전하지 않았다. 애리조나의 겨울도 서서히 끝나가고 날씨가 따뜻해졌다. 사막지역인지라 금방 더운 날씨가 되었다. 뜨거운 햇볕을 받으면 지면이 열을 받아서 ground effect는 더욱 심해진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햇볕 아래에서 아지랑이 같은 열기가 활주로 바닥에서 육안으로도 보일 정도가 된다. 초보자에게는 겨울보다 여름이 더 착륙하기가 어렵다.

처음 이착륙을 배우고 어느 정도 감을 익혔다고 생각했었지만, 알고 보니 그것은 날씨가 좋아서였던 것이었다. 착륙에 슬럼프가 찾아왔고, 점점 더 무엇이 맞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전에는 분명 이런 식으로 해서 내렸더니 잘 되었는데 이제는 잘 안되니 이 전의 방식이 옳았던 것이었는지 모든 것들이 혼란스러워졌다. 랜딩을 하기 위해서 100가지가 필요하다면 매번 랜딩이 그 100가지들이 충족이 되어야 하는데, 시도를 할 때마다 다른 식으로 랜딩을 하다 보니 100가지 중에 어떤 것이 맞았고 어떤 것이 틀렸는지를 정확히 알 수가 없게 되는 그런 기분이었다. 무슨 퍼즐게임을 하듯 하나씩 소거해가며 답을 찾는 과정이 지루하게 흘렀고, 교관인 피트는 지쳐갔다. 그의 짧은 인내심과 그로 인한 호통과 비인격적인 말들까지도 참아가며 연습을 했지만 쉽게 내 뜻대로 이루어지진 않았다.

자가용 조종사 과정 3개월 동안 마음 편한 적이 거의 없었다. 나만 힘들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 동기들 모두 저마다 힘들어했다.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지만. '왜 잘 안될까, 나는 왜 재능이 없는 걸까' 생각이 미칠 때면 영화 가타카의 주인공을 생각하며 버텼다.

"하느님이 행하신 일을 보라, 하느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 전도서 7장 13절

가타카의 첫 장면에서 나오는 말이다. 비록 신자는 아니었지만 이 말이 크게 와닿았다. 내 비록 재능이 없더라도 내 노력이 다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힘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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