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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종사 도전기/자가용조종사(PPL)

[ep.8] 첫 비행 (2) 주어진 재능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분야에 따라 재능이 얼마나 중요한가도 천차만별이다. 특히 예술이나 스포츠 영역에서는 재능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비행도 이런 재능이 중요한 영역 중 하나다. 특히 초기 비행교육 과정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많은 조종사들이 말하기를 "시간이 지나고 비행기를 많이 타보면 누구나 잘한다."라고 말한다.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한다. 하지만 문제는 제한된 시간과 비용 내에서 비행기 조종에 익숙해 져야 한다는 점이다. 비행교육은 한시간에 400불가량의 만만찮은 교육비가 든다. 때문에 웬만해서는 비행기를 원하는 만큼 많이 탈 수 없다. 추가로 나는 회사에 소속된 교육생 신분이었기 때문에 정해진 기간 내에 각 단계들을 통과해야 했다. 그래서 비행 초기에는 재능이.. 더보기
[ep.7] 첫 비행 (1) 첫 순간은 언제나 특별하다. '처음'이라는 말에는 설렘과 긴장감이 있다. 지금은 10여 년의 민항사 조종사의 경험으로 비행시간이 수천 시간이 되었지만 내게도 처음 비행을 했던 순간이 있었다. 첫 비행의 기억이 설레고 즐거웠냐 하면 사실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지금은 희미해져 버려 첫 비행을 회상하자면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다. 단편적인 기억들이 떠오르는데 그마저도 첫 비행 때의 기억인지 그 후의 비행교육을 받던 기억들이 섞여버린 것인지 확실치 않다.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내가 정신을 놓고 있는 사이에 시간이 휙 지나가 버렸던 것은 기억이 난다. 여유롭게 주변 광경을 보며 경치를 즐기고 교관과 간간히 잡담을 나누고 이런 겨를은 없었다. 말 그대로 쏜살같이 시간이 지나갔고 영혼이 가출한 .. 더보기
[ep.6] 비행학교 애리조나에 도착한 것은 늦은 밤이었다. 비행학교에서 행정업무를 맡고 있는 제인(Jane)이 우리를 픽업해 주기 위해 나와있었다. 미국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유명한 프랜차이즈 인 앤 아웃 버거에 가서 햄버거도 사주었다. 그 후 그녀는 우리를 숙소로 태워주었다. 숙소에서 간단한 향후 일정들을 설명해 주고 돌아갔다. 숙소는 비행학교에서 정해주는 아파트단지에 렌트를 해서 마련했다. 물론 렌트비는 교육비에 포함되어 있었다. 편조들끼리 같은 숙소를 사용했는데, 무조건 2인 1실은 아니고 큰 집의 경우에는 4인 1실도 있었다. 내가 살 집에는 편조인 최상훈을 포함해서 내가 편조를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던 윤성범, 그리고 문정호 이렇게 4인이 같은 집을 배정받았다. 윤성범과 문정호는 우리 동기 중에 나이가 가장 많은 형들.. 더보기
[ep.5] 출국 선배들과의 만남 미국 출국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선배들이 귀국했다. 1년 먼저 비행 교육을 받은 선배들이 돌아온 것이다. 선배들은 우리에게 비행교육과 미국 생활에 대해서 생생한 정보들을 들려주었다. 비행교육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학교의 분위기는 어떤지, 교관들은 어떤 사람들이 있으며 좋은 교관, 나쁜 교관은 어떤 사람들인지, 미국 생활은 어떻게 했는지 등등을 말해주었다. 비행 교육을 갓 마치고 온 선배들이라 여유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불안감과 긴장감들도 함께 보였다. 그 선배들 동기 중에 미국 비행훈련의 막바지에서 낙오한 선배가 있어서 그래 보였던 것 같다. 같이 동거 동락하며 1년여 기간을 함께했던 동료가 갑자기 짐을 싸고 돌아간 것이다. 회사라는 조직의 시스템은 여지나 융통성이 없다. 부탁하고 사.. 더보기
[ep.4]편조 미국으로 본격적인 비행교육을 받으러 가기 전에 한 달여 기간 동안 '그라운드' 교육을 받았다. 그라운드 교육이란 비행 이론, 기상, 관제용어 같은 것들을 배우는 것을 말한다. 공학을 전공한지라 비행 이론 같은 것들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실제로 비행을 하면서 이런 것들을 적용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당시 나는 자동차 운전도 미숙한 장농면허 소지자였다. 그리고 토종 한국인으로서 영어는 학교에서 글로 배운 것들이 다였다. 그런 내게 한 달 후 미국으로 가서 비행기 조종법을 영어로 배워야 한다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거기에 비행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큰 빚을 진 실업자가 되는 상황까지 덤으로 말이다. 성격이 대범하고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래, 까짓것 부딪혀 보자!' 하며 .. 더보기
[ep.3]첫 출근 최종 합격 발표가 있던 날. 아침부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몇 달 동안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감정의 기복은 들쭉날쭉하였다. 이제 오늘이면 어떤 식으로든 이 마음고생이 일단락이 될 것이다. 합격자 발표는 오후 5시에 홈페이지에서 확인이 가능했다. 시간이 너무 더디게 갔다. 오후 5시에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축하합니다. 최종 합격하셨습니다." 얼떨떨했다. 엄청나게 이루고 싶었던 무언가를 이룬것인데 기분이 날아갈 듯 기뻤다기보다는 생각보다 무덤덤한 기분이 들었다. 이것은 내 성향의 문제기도 했다. 나는 어떤 목표를 위해 매진할 때는 그 목표를 엄청나게 갈구하다가도 막상 이루고 나면 무덤덤하게 느끼곤 하였다. 막상 힘들게 이루고 나면 그 과정이 시시해지기 때문인 건지, 혹.. 더보기
[ep.2]조종사 신체검사 입사 전형은 길었다. 거의 반년에 걸쳐 전형이 이뤄졌다. 자기소개서, 인적성검사, 영어시험, 실무진 면접, 영어면접, 1차신체검사, 임원면접, 2차신체검사 이런 식으로 잘게 쪼개서 전형이 이뤄졌는데 각 단계 사이에 대략 1달 정도씩 걸렸다. 이렇게 오래 걸리는 입사전형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다른 회사들은 한 두달이면 결과가 나왔던 것 같은데. 지원자 입장에서는 한 단계, 한 단계가 피 말리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더군다나 서울에 연고가 없었던 나는 매 전형 때 마다 상경을 해야했다. 서울 지리에 밝지도 않았고, 서울에 오는 것이 마냥 좋았던 촌놈이라 처음에는 약간 설레고 들뜬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전형이 진행 될수록 서울에 한번 올라갔다 내려가는것이 부담스러워졌다. 비행기를 보러 김포공항을 가는 것은.. 더보기
[ep.1]면접 면접 "왜 조종사가 되려고 하십니까?" 머리에 희끗함이 살짝씩 보이는 4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면접관이 물었다. 인자해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물었지만 어딘지 깐깐함을 숨기고 있는 듯 보였다.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인상이었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이 사람은 B747기의 기장이자 조종사들의 훈련을 담당하는 운항훈련팀의 팀장이었다. 내가 훈련생이 되면 나의 훈련을 담당하는 책임자이기도 했다. 가로로 긴 회의장 같이 생긴 방안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대여섯명의 면접관들이 앉아있고 맞은 편에도 대여섯명의 면접자들이 마주보고 앉아있었다. 면접관들 뒤로는 긴 창이 있었다. 그 창으로 김포공항에 착륙하는 비행기들이 간간히 지나갔다. ㅇㅇ항공 본사는 김포공항에 인접해 있어서 비행기가 바로 앞에서 보였다. 착륙 후 제동을 .. 더보기
[ep.0] 나의 조종사 도전기_프롤로그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군대를 갓 전역한 나는 목표를 잃고 방황하고 있었다. 흐리멍텅한 눈에 삶에 의욕도 없고 자신감은 한없이 위축돼 있었다. 될데로 되란 심정만이 가득했다. 여기저기 취업 원서를 넣으며 미래에 대한 아무 기대도 없이 살았다. 부푼 꿈을 꾸고 처음 대학교에 입학했던 때가 떠올랐다. 로봇공학자가 되고 싶었다. 공부와 연구를 하며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성취해 나가면 마냥 즐거울 것만 같았다. 학창시절에 수학과 과학이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대학교에서 공부를 해보니 내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나보다 더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열심히 한게 아니라 열심히 한 것같은 흉내를 낸 것 뿐이었다. 고등학교 때 그렇게 재미있었던 수학과 과학이 갑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