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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종사 도전기/자가용조종사(PPL)

[ep.0] 나의 조종사 도전기_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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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군대를 갓 전역한 나는 목표를 잃고 방황하고 있었다. 흐리멍텅한 눈에 삶에 의욕도 없고 자신감은 한없이 위축돼 있었다. 될데로 되란 심정만이 가득했다. 여기저기 취업 원서를 넣으며 미래에 대한 아무 기대도 없이 살았다.

부푼 꿈을 꾸고 처음 대학교에 입학했던 때가 떠올랐다. 로봇공학자가 되고 싶었다. 공부와 연구를 하며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성취해 나가면 마냥 즐거울 것만 같았다. 학창시절에 수학과 과학이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대학교에서 공부를 해보니 내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나보다 더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열심히 한게 아니라 열심히 한 것같은 흉내를 낸 것 뿐이었다. 고등학교 때 그렇게 재미있었던 수학과 과학이 갑자기 너무 어렵고 그래서 싫었고 후엔 무섭기 까지 했다. 재미있었던 것은 그 학문의 본질이 흥미로워서였다기 보다는 남들보다 조금 더 잘하고 좋은 점수를 맞아서였다.

그렇게 4년을 연구와 학계에 미련을 가지다가 군대를 갔다. 군대를 갈거면 일찍 다녀와야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다. 나는 대학교 1,2학년들이 가는 군대를 4학년이 되어서야 갔다. 같은 또래의 동기들 중에 그때까지 군대를 안 간 친구들은 대학원에 진학해서 병역특례로 군 문제를 해결하려는 친구들 뿐이었다. 연구에 뜻을 일찌감치 접었거나 혹은 빨리 병역문제를 해결하고 유학을 가고자 하는 친구들은 이미 2년의 병역을 마치고 복학해서 열심히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이도저도 아니었다. 4년 간 공부를 해보니 대학원에 가서 연구를 할 자신이 없었다. '이 길이 맞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늦었지만 군대를 다녀와서 취업을 하던지 대학원을 다시 진학하던지 선택하기로 했다. 말하자면 선택의 유예였다.

군대 입영 날짜를 기다리고 있던 그 즈음 법률이 바뀌면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이란 제도가 새로 생겨났다. 저걸 한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훈련소에 입소하여 자대를 배치받고 군복무를 하면서 틈틈이 공부를 했다. 그리고 전역해서 시험도 쳤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어중간한 성적표를 들고 지원을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게 되었다. 또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 길이 맞는 걸까?' 그런 쪽의 공부가 영 적성에 맞지 않았다. 웃기게도 알고보니 수학, 과학은 그래도 재미는 있는 것이었다. 그당시 내가 얼마나 이랬다가 저랬다가 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지원을 포기하기로 했다. 후에 들었는데, 같이 준비했던 한 친구는 나보다 조금 낮은 성적표를 가지고 서울의 유명 로스쿨에 합격했다고 했다. 나는 진심으로 그 친구를 축하해 주었다. 지금 그 친구는 한 기업의 사내변호사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

결국 전역하고 복학했는데 제자리였다. 객관적인 타인의 시각으로 보면 어떤 결정도 못하고 이 길도 싫다 저 길도 싫다 합리화하며 갈팡질팡하던 모습이 나의 20대였다. 결국 난 취업을 선택하였다. 2021년의 청년들에게는 어떻게 비칠지 모르겠지만 10여년전 나는 취업 원서를 쓰면서 생각했었다. '내 인생은 결국 실패했구나. 이렇게 월급쟁이로 평생 살겠구나. 이제 내게 미래는 없구나.' 배부른 소리지만, 어떻게든 취업은 될 것이라고 난 쉽게 생각했었던 것이다. 주변 선배들도 다 어디든 대기업에 취업했었다. 공대니까 취업이 잘되긴 했었다. 지금도 공대쪽은 그나마 취업이 잘 된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이상한 기류가 있었다. 졸업하고 기업체에 취업하는 것은 일종의 패배자같은 기류였다. 웃기지만 그땐 진짜 그랬다.

패배감에 절어 취업원서들을 쓰면서 이런 기업, 저런 기업들을 보게되었다. 그러다가 한 기업의 취업공고를 보게되었다. 'OO항공 인턴(조종사 훈련생)' 모집.
이거 뭐지? 그 때 왠지 모르게 난 '이 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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