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왜 조종사가 되려고 하십니까?" 머리에 희끗함이 살짝씩 보이는 4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면접관이 물었다. 인자해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물었지만 어딘지 깐깐함을 숨기고 있는 듯 보였다.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인상이었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이 사람은 B747기의 기장이자 조종사들의 훈련을 담당하는 운항훈련팀의 팀장이었다. 내가 훈련생이 되면 나의 훈련을 담당하는 책임자이기도 했다.
가로로 긴 회의장 같이 생긴 방안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대여섯명의 면접관들이 앉아있고 맞은 편에도 대여섯명의 면접자들이 마주보고 앉아있었다. 면접관들 뒤로는 긴 창이 있었다. 그 창으로 김포공항에 착륙하는 비행기들이 간간히 지나갔다. ㅇㅇ항공 본사는 김포공항에 인접해 있어서 비행기가 바로 앞에서 보였다. 착륙 후 제동을 위해 리버스 엔진을 사용하는 소리도 들렸다.
"어려서부터 조종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많은 지원자들이 비슷한 대답을 하고 있었다. 나도 어렸을 때 꿈이 파일럿이던 때가 있었다. 초등학생시절 모 방송국에서 방영했던 '파일럿'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막연히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 때는 지금처럼 정보도 많이 없고 어떻게 조종사가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공군사관학교에 가면 전투기 조종사가 될 수 있다는 정도가 내가 아는 전부였다. 차차 커가면서 비행기 조종사라는 꿈은 비현실적이고 철없는 꿈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잊혀졌다. 그 채용 공고를 보기 전까지는 오랫동안 생각도 하지 못했던 꿈이었다.
이제 내가 대답할 차례가 되었다.
"저도 다른 지원자분들과 비슷하게 비행기 조종사에 대한 꿈을 어려서부터 키웠지만 정보 부족등의 이유로 어떻게 조종사가 되는지 알 수 없어 막연하게 포기하고 있다가 취업준비를 하면서 ㅇㅇ항공의 조종사 훈련생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지원자들은 추가 질문이 없었는데, 훈련팀장은 나에게 추가질문을 했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는데 비행기 조종사가 아니라 비행기 개발자가 되어야 하는것 아닌가요? 혹시 조종사의 높은 연봉 때문에 지원을 하는것인가요?"
갑자기 연봉에 대해서 언급해서 나는 당황했다. 땀도 나는 듯 했다. 어떻게든 머리를 짜내서 대답을 해야 했다. 사실 당시만 해도 조종사가 고연봉 직업이라는 신문기사도 나고 많은 사람들이 돈을 잘번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정작 나는 조종사 연봉이 얼마인지 정확히 알지도 못했었다. 면접 준비를 하면서 지원동기에 대해 준비했던 것들을 어렵싸리 다 꺼내어 대답을 찾아야 했다.
"...기계 공학을 전공해서 기계나 비행기 같은 것들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비행 원리에 대해서 공부하고 개발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지만 실제로 운용하고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도 의미있다고 생각하여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
가까스로 대답을 했고, 다행히 추가 질문은 없이 다음 면접자에게 질문이 넘어갔다. 훈련팀장은 내 답을 듣고는 무언가를 종이에 쓰셨다.
면접이 끝나고 회사 건물을 빠져나오며 멀리 보이는 비행기들을 바라봤다. 사실 그때까지 비행기를 타본 기억도 몇 번 없었다. 계속 이착륙하는 비행기들을 보니 약간 비현실적인 기분이 들었다. 그때는 아직 학생티를 못벗어난 20대 중반이었다. 피부로 느껴지는 회사의 보수적인 분위기와 '면접을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까지 더해져 그 날의 기억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하다.
며칠 후 면접결과가 발표되었다. 다행히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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