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가볍게 제 생각을 적어볼까 합니다. 먼저 밝혀두지만 이번 글은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항공업계에 몸 담은 현직 조종사로서 제 경험에 비추어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고백
제게는 이제 꽤나 오래전 이야기지만(...) 학창시절 체육시간을 떠올려 보면, 처음 접하는 운동인데도 어떤 학생은 처음부터 척척 잘하는 반면 어떤 학생은 몇 번을 연습해도 잘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처음 비행을 시작할 때도 비슷합니다. 누구는 첫 비행부터 이륙과 착륙을 그럴듯하게 하는 반면, 어느 누구는 감을 못 잡고 여러 번의 훈련을 하면서 간신히 비행을 배우기도 합니다. 차차 비행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익숙해지겠지만 습득 속도는 사람마다 제 각각입니다. 제 경우를 고백하자면, 저는 후자였습니다. 동기들과 비행을 하면 앞서가는 동기들의 비행을 어깨너머로 배우며 늘 진도에 뒤쳐졌습니다. 기본 면장을 취득하는 교육훈련기간 동안 숱한 어려움이 많았고 그 과정 중에 많은 고통과 그리고 인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 경험이 새로운 시작을 하려는 예비 조종사분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어떤 사람이 비행을 잘할까?
제가 기본 훈련때 부터 에어라인 생활까지 비행을 한 경험상, "기본 면장'을 딸 때를 국한하여 어떤 사람이 비행을 잘하는지 한번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참고로, 절차(Procedure) 비행을 하는 에어라인 조종사는 조금 이야기가 다릅니다.)
1. 운동신경이 좋은 사람.
2. 멘탈이 강한 사람.
교관의 호통과 잔소리에도 강한 멘탈로 극복하는 사람
3. 멀티태스킹에 능한 사람.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 정신을 분산 배치하여 총체적으로 상황을 인식할 줄 아는 사람. 반면에 일을 할 때 한 가지 일에 몰두하여 주변을 까맣게 잊는 사람은 비행 교육 시 애를 먹을 수 있습니다.
4. 수정이 빠른 사람.
조작의 수정이 빠르려면, 우선 본인의 조작이 어땠는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이전 조작에 대해 정확히 알면 알수록, 즉 본인이 생각을 많이 해봤고 그만큼 쪼개서 분석할 줄 알수록 수정이 쉬워집니다. 비행 조작이 순식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어떻게 조작했는지 정확히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5. 임기응변에 능한 사람.
훈련전에 늘 비행 준비를 해가고 내일의 비행에 대해 연습해 가지만 예상대로 흘러가는 비행은 많이 없습니다. 상황이 바뀌면 빠르게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6. 꼼꼼한 사람.
물건 정리를 잘하고 약속이나 준비물, 일정을 잘 기억하고 실수를 많이 하지 않는 성격이라면 유리합니다. 반대로 평소 덜렁거린다거나 물건을 잘 잊어 먹거나 실수를 많이 하는 성격이라면 비행 교육에 불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비행 잘하는 사람의 특성을 표현했지만 조금은 추상적이고 구체적으로 와 닿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비슷한 환경을 찾아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자신이 평소 어떤 모습인지 성찰해 보자.
일상 생활에서 자신의 모습이 이런 종류의 사람과 비슷하다면 비행이 적성에 맞을 수 있습니다.
1. 처음 배우는 운동을 시작할 때 남들과 비교하여 일찍 배우는 편인 사람. 운동 레슨을 받을 때 코치의 수정사항을 쉽게 이해하고 본인의 잘못된 운동 자세를 수정하는데 남들보다 어려움을 덜 겪는 사람.
2. 남자의 경우 군대나, 비슷한 종류의 상하 관계 속 단체 생활을 하며 압박이 심한 환경에서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도 임무를 잘 해내는 사람.
3. 초행길, 복잡한 시내 주행 길을 선택하여 운전을 해 봅니다. 내비게이션을 켜놓고, 핸즈프리로 전화를 걸어 약간은 친하지 않은 거리감이 있는 사람과 통화를 하면서 운전을 합니다. 대화 주제를 정하기 어렵다면 간단한 질문과 대답 형식으로 통화를 이어나가도 됩니다. 이렇게 통화를 하며 운전을 하면서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을 시작부터 끝까지 틀리지 않고 잘 갈 수 있다면 비행 적성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4. 한가지 일에 몰입하기를 잘하고, 시간 가는지 몰랐을 정도로 집중력이 좋다는 평가를 많이 듣는 사람, 혹은 본인이 생각하기에 집중을 잘하는 것이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의외로 비행 훈련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비행 훈련은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오히려 위에 예를 든 운동이나 더 복잡한 상황하에서 운전하는 경우와 더 비슷합니다.
5. 인성적인 측면에서 말씀드리자면, 주변에서 둥글둥글한 성격이라고 평가받는 사람이라면 유리합니다. 까칠하거나 모난 사람보다는 타인의 지적이나 조언에 감정 소모가 적고 발전적으로 수용하려는 긍정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문제는 시간.
'비행기 기본 면장을 따는 것'에 국한한다면 익숙해지는데까지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누구나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간과 비용, 그리고 상황상 무한정 비행을 할 수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특히 군 경로의 비행 커리어를 계획하신다면 단계별로 적절한 기량을 갖추지 못하면 교육을 계속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본인에 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했습니다. 비행을 시작하려면, 객관적으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도 control 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비행기를 control 할 수 있겠습니까.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
모든 것이 그렇듯이 일반화시키기엔 많은 예외가 있습니다. 제가 적은 내용들이 이론적으로 또는 통계적으로 증명된 것이 아니니 일반화해서 생각하시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앞서 고백했지만 저는 동기들보다 비행을 잘하는 학생도 아니었고, 그래서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버텼습니다. 위에 적어놓은 사람과 저는 정반대의 사람입니다. 체력은 좋았지만 운동신경이 뛰어나지도 않고, 자동차 운전하며 네비도 자주 틀립니다. 특히 저는 일을 할 때 몰입해서 집중하는 경우가 많아서 처음 비행할 때는 계기 모니터링에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자존심도 강하고 승부욕도 강해서 다른 사람에게 지적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서 처음에 제가 계획한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큰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하지만 이 업계에서 10년 이상을 버텼네요. 우선 시작은 제 부족한 점을 인정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 틀을 깨야합니다. 만약 본인이 제가 적은 '비행 잘하는 사람의 특징' 에 속한다면 축하드립니다. 아마 남들보다 수월하게 비행 교육을 받으실 겁니다. 하지만 자신이 객관적으로 성찰해 봤을 때 불리한 면이 많다면 둘 중 하나입니다. 본인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거나, 혹은 본인에게 더 잘 맞는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 글이 처음 조종사의 길을 선택하려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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