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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사의 일상 생활

기장의 결정, 부기장의 결정 (2) (Feat.M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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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의 결정, 부기장의 결정 (1)

조종사는 결정을 하는 사람(Decision Maker)이다. 상황에 맞는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에 있었던 일을 각색하여 조종사의 의사결정 과정을 글로 써보고자 한다. 동남아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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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엔진 시동은 걸렸고, 지상 정비사들의 핸드시그널이 보였다. 기장님은 상황을 판단했다. 

mel 26-14-08 
(A) 승무원들이 벙크를 사용할 때 : RAMP RETURN (AFTER DOOR CLOSE) 

(B) 승무원들이 벙크를 사용하지 않을 때 : 'O PROCEDURE 를 적용'

"MEL 상에는 ramp return 아이템으로 나오지만 (B) 승무원들이 벙크를 사용하지 않으면 'O PROCEDURE'를 적용하도록 돼있네. 한번 O PROCEDURE를 살펴보자." 

기장님의 말씀에 나는 O PROCEDURE 를 열었다. 'O PROCEDURE' 란 항공기 결함이 있을때, 정비사의 조치없이 운항 승무원(Operation crew/ O)이 절차를 수행한뒤 비행을 할 수있는 절차를 말한다. 비교적 결함이 가벼울때 조종사의 임시적인 조치로 대신할때 사용한다. 만약 항공기 결함이 중할때는 'M PROCEDURE' 라고 해서 정비사(Mechanic/  M)의 조치가 필요하다. 이럴 경우에는 별수없이 ramp return 해야한다. 

mel 26-14-08B O PROCEDURE 

비행 전 PIC(Pilot In Command : 지휘기장)는 객실승무원들에게 벙크에 화재/연기가 없는지 주기적으로 확인해야함을 브리핑할것.  벙크내 모든 라이트와 전자기기사용을 하지 말것.

이번 결함의 경우에는 승무원들이 벙크를 사용하지 않기만 하면 운항이 가능한 것이었다. 기장님께 O PROCEDURE 를 말씀드리자 기장님이 결정을 내렸다. 

"승무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오늘 비행은 벙크를 사용하지 않고 운항을 하도록 합시다. 만약 주기장으로 돌아가서 비행기를 고치고 돌아가려면 다시 준비하고 허가받고 비행기 출발하는데 딜레이가 얼마나 걸릴지 알수없으니까. 부기장은 어떻게 생각해요?"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승무원들이 좀 힘들겠지만 승무원들의 REST를 위해서 비행기를 딜레이 시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나는 매뉴얼을 문자 그대로 해석을 했다. '이번 비행은 승무원들이 벙크를 사용하는 비행이니까, 매뉴얼에 적혀있는대로 비행기를 고치고 가야한다.' 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기장님의 생각은 달랐다. 지휘기장(PIC)에게는 객실승무원을 포함해 기내의 총 지휘권이 있다. 승무원들을 지휘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이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판단은 객실승무원들을 지휘해서 비행기를 운항하는 것이다. 비행기 조건을 (A) 에서 (B)로 변경할 수 있었다. 

비행기는 정상적으로 시동을 걸고, 택시를 해서 이륙을 했다. 순항단계에 이르자 기장님은 사무장(PURSER)을 불렀다. 

"사무장님, 오늘 비행기에 결함이 있어 벙크를 사용을 못하게 되었습니다.새벽비행이라 피곤하시겠지만 4시간만 참고 인천으로 갑시다. 승무원들에게 상황이 어쩔수없음을 좀 잘 설명해 주세요.그리고 30분마다 한번씩 벙크에 화재나 연기가 없는지 확인해 주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기장님. 승무원들이 벙크에서 REST할 것을 고려해서 컨디션을 조절하고 나왔을텐데... 비행기 결함이 있다니 어쩔수없죠뭐. 제가 잘 말해보겠습니다." 

사무장님이 말씀을 잘 해주셨다. 긴 4시간 40분의 비행이 끝나고 비행기는 인천에 무사히 도착했다. 짐정리를 마치고 비행기에서 내렸다. 승무원들이 많이 지쳐보였다. 원래는 반갑게 인사하며 다음 비행을 기약하지만 오늘은 조금 냉랭했다. 이해는 됐다. 중간에 쉴 것을 예상하고 나왔는데 못쉰다고 하니 더 힘들었을 것이다.

퇴근을 하면서 오늘 비행을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오늘 비행으로 또 많은 것들을 배웠다. 기장으로서, 리더로서 어떤 결정을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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