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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사의 일상 생활

에어라인 파일럿이 본 [탑건:매버릭] (스포없음) feat.전투기와 민항기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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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건 : 매버릭

 

영화를 보기 전 알아두면 (쓸데없는) 잡학 비행 지식들

영화 탑건:매버릭(Top Gun:Maverick)을 봤습니다. 회사 조종사 동기들이 너무나 재미있다고 꼭 보라고 하길래 집 근처 영화관에서 4D로 보았습니다. 감상평을 먼저 말씀드리자면,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수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좀 심하게) 분석적인 성격이어서 사실성, 개연성이 떨어지는 영화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탑건:매버릭 을 보면서는 이런 이성적인 비판을 내려놓고 온전히 몰입해서 봤습니다. 너무 재밌게 봐서 영화가 끝나고 같이 봤던 아내에게 물어보니 아내는 영화가 재미는 있었지만 중간중간 이야기 전개가 너무 급하게 흘러가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부분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 이야기를 듣고 다시 한번 영화를 되짚어 보니 평소에 저였더라면 분명 아내와 비슷하게 느꼈던 부분이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조종사라서 비행기에 대한 선망과 항덕기질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2년 넘게 영화관을 못 가다가 코시국 이후 처음 영화관을 찾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4DX 영화관의 각종 요소들이 제정신을 쏙 뺄 정도로 몰입시켰던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정말 저는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를 정도로요.

창의적인 비행 vs 표준화된 비행

저는 에어버스 조종사로 커리어를 시작해서 전투기는 몰아본 적이 없습니다. 전투기를 조종하면 어떨까 궁금했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민항기 조종사로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습니다. 톰크루즈가 연기한 매버릭 교관은 F-18의 교본을 휴지통에 버리면서 '우수한 성적의 훈련생들은 이미 교본은 다 숙지했을 것'이라며 교본에 없는 창의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전투기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이 대목에서 어느 정도의 영화적 허구가 들어갔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전투기 조종사들도 교범에 의한 비행을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민항기의 비행은 창의적인 비행을 했다가는 해고를 당합니다.  민항기는 FCOM, POM , FOM, FCTM 등의 교범의 절차대로만 비행을 해야 합니다. 

영화의 멋진 전투씬들을 보면 조종사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결과가 좌지우지됩니다. 그래서 전투기 조종사들의 훈련과 기량 향상이 정말 중요합니다. 반면에 민항기의 비행은 어떤 조종사가 비행을 하더라도 일정한 범위 내에서 동일한 결과가 나오는 것을 중요시합니다. '표준화(Standardization)'라고 합니다. 

같은 비행기지만 전투기와 민항기가 이렇게 컨셉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스레 하게 되었습니다. 목적이 다르니 다를 수밖에 없겠죠. 개인적으로 전투기 조종은 '예술의 영역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투기와 민항기

전투기는 각종 기동(maneuver)을 하며 자유자재로 하늘을 날아다닙니다. 민항기는 상대적으로 기동의 폭이 제한적입니다. 이런 차이점이 생기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엔진 추력의 차이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비행기가 나는 원리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민항기는 기본적으로 베르누이의 정리에 따른 '양력'으로 비행을 합니다. 날개 위 아래로 충분한 속력이 생기면 양력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민항기의 엔진은 정확히 표현하자면 비행기를 위쪽 방향으로 가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빠르게 나갈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속력이 빨라지면 양력이 생겨 비행기가 뜰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 로켓을 생각해보면, 로켓은 날개가 없습니다. 로켓은 엔진의 추력만으로 비행을 합니다. 뉴턴의 제3법칙인 작용-반작용의 원리를 이용한 것입니다. 

전투기는 전투기 중량에 비해 엔진추력이 상당히 큽니다. 탑건: 매버릭 에 나오는 F/A-18의 자체중량이 10,400Kg , 적재중량이 16,700Kg인데 비해 엔진 추력은 16100Kg 중(AB, 애프터버너 시)으로 제원이 나와있습니다. 즉 엔진의 추력만으로 항공기의 중량을 거의 이겨 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전투기는 '비행기'지만 때에 따라 로켓의 원리처럼도 비행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륙을 하거나 순항을 할 때는 양력을 이용하여 비행을 하지만 급격한 기동시에는 강한 엔진 추력을 이용한 작용-반작용의 원리도 함께 사용합니다. 

민항기는 항공기 중량보다 추력이 현저히 적습니다. A380항공기를 예로들면 최대 이륙중량은 1254klb 인데 반해 추력은 300~400klb(75klb x 4) 로 1/4 수준 입니다. 

중력가속도 G

전투기 조종사들이 9G를 넘어서는 한계의 상황에서도 전투기를 조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뉴튼의 제 1법칙인 '관성의 법칙'으로 인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가속도 운동을 하는 물체는 관성력을 받게 됩니다. 버스를 타고 갈 때 버스가 속도를 바꾸지 않고 '같은 속도'로 운동하면 승객들은 아무 힘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버스가 출발하거나 멈출 때 속도가 변하는 가속도 운동을 하게 되면 관성력을 받게 됩니다. 전투기들은 이런 속도의 변화량이 급격하기 때문에 조종사들이 받는 관성력은 매우 커질 수 있습니다. 이 관성력을 G LOAD라고도 하며, 지구 중력가속도 G의 배수로 표현합니다. 조종사들은 G LOAD를 견디기 위해 Anti G Suit라고 하는 옷을 입습니다. 허벅지, 종아리, 복부에 압력을 가해서 머리의 혈압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합니다. 

ANTI G Suit

조종사뿐만 아니라 전투기도 G Load를 받기 때문에 내구성이 있도록 제작하고 허용 한계치도 테스트를 통해 조종사들에게 알려줍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F/A-18의 G limit은 7.5G 정도로 나옵니다.  이에 반해 민항기들의 G Load limitation 은 한참 적으며,  maximum 2.5G 정도입니다. 

F/A - 18 의 G Limitation

탑건 : 매버릭 , 개인적인 영화의 평점

항덕블로그이니까 비행 이야기들을 많이 써봤습니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탑건 : 매버릭은 개인적으로는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영화의 빠른 이야기 전개, 비행기 전투씬 등 훌륭한 연출과 연기, 전작과의 훌륭한 연계 등 미국 할리우드 영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편, 미국 영웅물들이 가지는 한계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는 평가도 있습니다. 같이 본 아내와는 평가가 조금은 갈리는 영화였습니다만, 조종사로서, 그리고 항덕으로서 어느 정도 개인의 취향을 반영한 제 평점은 별 5점 만점에 4.8점 주겠습니다. ㅎㅎ 


영화관에 사람들이 정말 많더군요. 특히 4DX 영화는 예매가 힘들 정도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2년여 만에 간 극장이라 감회도 새로왔습니다. 무더운 여름, 독자님들도 건강 조심하시고 즐겁게 보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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