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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사의 일상 생활

'희망고문'에 대처하는 조종사의 생각(feat. 손흥민의 golden bo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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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 주의 시작입니다. 저는 요즘 기분이 참 좋습니다. 오늘은 제가 요즘 하고 있는 생각들에 대해 한 번 적어보려고 합니다. 

'나는 생각하는 대로 된다.'

생각은 위대함을 낳습니다. 머릿속에 생각은 정말 중요합니다. 생각은 어떤 것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을 생각하느냐가 결국 제 삶이 됩니다. 

손흥민, the Golden boot winner

손흥민이 EPL golden boot를 받았습니다. EPL 최고 득점왕이 되었습니다. 손흥민을 위대하게 만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손흥민의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손흥민은 위대한 생각을 했고 그래서 위대해진 것이라고 말입니다. 

희망고문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쓰이게 된 것이 한 5-6년 정도 되는것 같습니다. 더 일찍부터 쓰였는데 그때쯤 제가 알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아무 생각 없이 가끔씩 쓰던 말이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말에는 패배주의가 들어있었습니다. 

'희망고문'은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아예없거나 희박할 때,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고문과 같다는 말입니다. 논리적이고 현실적으로 들립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에 이 말은 일종의 '프레임'입니다. 이 단어가 생기기 전에도 비슷한 생각과 관념은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이 단어를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자 '희망고문'이라는 말은 이 생각과 관념을 한마디로 축약해 주었고 전달을 아주 쉽게 해 주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이 단어의 의미는 확고해졌고, 이제 '희망고문'을 스스로든, 타인에게든 하는 것은 나쁜 일로 통용됩니다. 

"지금 나 희망고문 시키는 거예요?
나는 내 스스로를 희망고문시키고 싶지 않아요."

저도 얼마 전 까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말이 무서운 것은 이 단어를 만든 것은 제가 아니지만 사람들이 다들 쓰니까 옳은 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희망을 가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너무 비현실적인 희망을 품는 것은 희망고문일 뿐이야."

'희망고문'이라는 단어를 대할 때 많은 사람들이 저처럼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대부분, 거의 모든 사람이 희망고문은 나쁜 것이며 옳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의식하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은연중에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것이 말이 가진 힘이고, 프레임이라는 개념입니다. 

손흥민의 어릴 적 꿈

그런데 정말 희망고문은 나쁜 것일까요? 애시당초 이 희망고문이라는 단어가 맞는 말이고, 옳은 말일까요? 

아시아의 어린이 축구선수가 EPL 득점왕을 꿈꾸는 것을 상상해 봅시다. 이것만큼 '희망고문'의 완벽한 예시가 있을까요? 손흥민은 득점왕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어릴 적 꿈을 이루어서 행복하다.'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위대한 일은 안될 것 같아 보여도 될 것이라고 믿어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희망이라는 것은 원래 그런 것입니다. 남들은 믿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손흥민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누군가의 희망이 누군가에게는 희망고문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누군가의 희망고문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둘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생각, 믿음 이런 것들이 아닐까요? 그저 다르게 생각하고 믿었을 뿐입니다. 거기서 부터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이 위대함을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실 알고있다. 

사람들은 '희망고문'을 싫어하고 틀렸다고 말하지만 사실 내면 깊은 곳에서는 오히려 '희망고문'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패색이 짙은 스포츠 경기를 떠올려 봅시다. 상대팀과의 점수차가 너무 나서 경기장 안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역전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그런 경기 말입니다. 지고 있는 팀의 선수들이 하나같이 

'이 경기는 글렀어. 더이상 열심히 하는 것은 희망고문이야.' 

라고 생각하며 게임을 한다면 경기장의 관중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그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하나에서 패배주의 짙은 '희망고문'의 환영들이 새어 나올 것입니다. 그것을 보는 모든 사람이 그들의 플레이에서 그 생각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비록 지고 있는 경기라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감동합니다. 여기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그저 열심히 몸을 움직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뼛속까지 아직 이길 수 있다고, 가능성을 믿으며 플레이하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생각'이 들어가야 진정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 됩니다. 이것을 '희망고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어떻게 생겨났고 어떻게 퍼졌는지 잘 모르지만 앞으로 저는 이 말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 말을 생각하는 순간 부정적인 생각이 희망을 갉아먹고 나의 생각과 신념을 흔들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운동선수들이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라는 작은 생각을 처음 시작할 때와 같은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행복 회로

객관적으로 보자면, 코로나가 퍼져있고, 항공업의 미래는 안갯속에 가려져 있습니다. 특히 기성 조종사나 조종사를 꿈꾸는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 자조적인 말과 글들을 자주 접합니다. 그들은 쉽게 타인의 희망을 폄하합니다. 제가 쓰지 않기로 한 '그 말'을 언급하면서요. 

반대로 이런 말도 있습니다. '행복 회로'. (이것도 사실 회의적이고 자조적으로 사용되는 단어이긴 합니다만..)

생각은 중요합니다. 우리는 결국 생각하는 대로 살게 됩니다. 그리고 말은 내가 생각하는 것을 밖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또 반대로 말로 인해 내가 어떤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저는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그럴 것입니다. 열심히 행복 회로를 굴려보렵니다. 

헨리 포드의 유명한 말로 글을 마치려 합니다. 

"당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든,
당신이 옳다. "

- 헨리 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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