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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종사 도전기/자가용조종사(PPL)

[ep.13] 왈리의 과외 (feat. 조종석 시트포지션과 눈높이, ai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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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관 회의

비행학교의 교관 회의실. 학교의 치프 파일럿 벤(Ben)과 선임 교관인 토빈(Tobin), 왈리(Walley) 그리고 내 전담 교관인 피트도 앉아있었다. 그들은 심각하게 토의를 하고 있었다. 이들의 토의 주제는 나의 진도와 향후 계획에 관한 것이었다. 다른 동기들은 자가용 조종사 자격증인 PPL(Private pilot license)를 모두 취득하였는데 마지막 한 명, 나는 아직 PPL의 자격시험인 'FAA Checkride'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 

"이 학생은 비행에 소질이 없습니다. 제가 아무리 가르쳐도 나아지는 것이 없습니다. 더 무엇을 해 주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피트는 억울한 듯 말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음... 내가 한번 가르쳐 보도록 하지."

백발에 흰 수염의 노신사가 조용히 말했다. 나의 progress check 1을 떨어뜨렸던 왈리였다. 

"좋습니다. 왈리 교관이 맡아 주신다면 큰 힘이 되겠군요. 일정이 빠듯하니 왈리 교관과 2회의 추가 비행교육을 하고 FAA Checkride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치프 파일럿 벤이 결론을 내렸다. 회의가 끝나고 교관들이 교관 회의실에서 나왔다. 그때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 앞에서 누군가 넘어지는 소리였다. 윤성범이 넘어져 있었다. 문밖에서 교관 회의를 몰래 엿듣고 있다가 넘어진 것이었다. 왈리의 분노한 눈이 윤성범과 마주쳤다. 

"학생조종사가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이곳은 교관 이외에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윤성범은 당황한 나머지 우물쭈물하였다. 평소 가십거리에 관심이 많고 동기들의 진행상황과 본인을 비교하기를 좋아했던 윤성범은 내 비행상황이 어떤지 궁금해 몰래 교관 회의실 앞에서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던 것이었다. 다른 동기들은 자가용 조종사 면허를 취득하고 나만 남아있으니 그의 성격에 호기심을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윤성범은 이 일로 치프 파일럿에게 경고를 받았다. 

왈리의 과외

왈리와의 첫 교육 비행. 왈리가 조종석에 앉아 말했다. 

"피트에게 상황설명은 들었다. 내가 지켜본 결과 너는 큰 문제가 없어. 아직 경험이 없어서 스킬이 부족할 뿐이지. 네가 제대로 연습한다면 충분히 자가용 조종사가 될 수 있을 거야. 나는 너 같은 학생 조종사를 많이 봐왔고 가르쳐 봤어. 그들은 지금 훌륭한 조종사가 되어있지. 너도 분명히 그런 조종사가 될 거야. 나를 믿고 내 교육법을 완전히 신뢰하도록해."

규율을 중시하고 엄한 성격의 왈리가 갑자기 따듯한 말로 이렇게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심적으로 많이 힘들던 내게 그의 말은 큰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교육방식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의지도 생기게 하였다. 역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장' 같은 포스의 왈리였다.

우선 그는 내 조종석 포지션부터 바로잡았다. 시트 포지션을 높게 앉으면 시야가 더 넓게 보이는 장점이 있지만 지평선과 대시보드(dash board, 계기판 위의 편평한 부분), 엔진 카울(cowl, 프로펠러식 비행기의 엔진 부분을 덮고 있는 부분)의 각도를 민감하게 캐치할 수 없다는 단점도 있었다. 

세스나(cessna 172) cockpit view. 조종석에서 멀리 보이는 지평선과 카울, 대쉬보드의 각도변화, 거리감이 착륙시 중요한 지표가 된다.
랜딩 시 조종사가 보는 지평선과 엔진 카울의 거리 변화. 조종사가 기수를 드는 조작을 하면 위의 그림에서 아래그림으로 장면이 바뀐다. 지평선과 엔진카울과의 거리가 바뀌는 것(화살표로 표시한 길이)을 확인할 수 있다.

 

왈리는 먼저 본인의 시트부터 조절을 했다. 익숙한 동작으로 매번 비행할 때마다 앉는 시트 포지션으로 조절을 한 뒤 자신의 눈높이와 내 눈높이가 같아지도록 내 시트 포지션을 조절해 주었다. 왈리는 키는 그리 크지 않고 배가 좀 나왔지만 전체적으로 탄탄한 몸이었고, 나는 마른 몸에 키는 왈리보다 컸다. 서로 다른 체형의 우리 두 사람은 이제 세스나 조종석의 좌우측에 나란히 앉아 같은 높이의 눈높이를 맞추고 같은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렇게 앉은 상태에서 내게 멀리 지평선을 바라보라고 했다. 고개를 고정한 상태에서 초점을 지평선에 맞췄다. 조종석 앞 유리창 저 너머에 지평선이 보였다. 광활한 애리조나 사막에서는 산이나 언덕이 얼마 없어서 지평선이 잘 보인다. 왈리는  앞유리창(windshield)에 지평선이 어느 위치에 보이는지 손가락으로 찍어보라고 했다. 내가 앞유리창에 손가락으로 선을 그으며 이 높이에 지평선이 있다고 하자 그는 준비한 펜으로 작은 점을 찍어주었다. 

"랜딩 할 때 이 점을 놓쳐서는 안 돼. 이 점이 항상 지평선과 멀어지지 않게 거리를 유지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착륙할 수 있어. Short field landing도 마찬가지야. 이 점을 aiming point에 놓고 일정하게 접근을 하다가 플레어(flare, 착륙을 위해 서서히 기수를 드는 조작)를 시작하면 지평선과 이 점을 서서히 맞추는 거야. " 

왈리는 차근차근 또박또박 말해 주었다. 피트에게서는 이런 식의 시트 높낮이 조절과 랜딩 시 레퍼런스에 대한 설명은 들어보지 못했다. 피트나 최상훈같은 비행 감각이 있는 사람들은 몇번 비행을 하면 거의 본능적으로 그런 감을 캐치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잘하는지 사실 잘 모른다. 그리고 그들도 나같은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니 가르치기 힘들것이다.) 하지만 왈리가 설명해준 이 방식을 듣자 랜딩의 조작들을 잘게 쪼개서 생각할 수 있게 되고 분석적으로 랜딩이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아, 그런 것이었구나.' 

그냥 몸으로 어떻게든 감을 익히려고 몸부림치던 것이 이제야 명확하게 그림이 그려진 느낌이랄까.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착륙, 랜딩이라는 기술에 이면을 볼 수 있게 된 느낌이었다. 눈이 떠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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