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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사의 일상 생활

When a pilot meets the little pri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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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휴직을 한지도 1년 반이 훌쩍 지났습니다. 제가 일하던 항공사는 일감이 줄었고 비행기는 멈췄습니다. 일상은 멈추었고 인간관계도 단절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무인도에 살아남은 체류자처럼 삶의 목표를 잃은 채 살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삶은 살아야 했습니다. 제 대신 일하는 아내를 도와야 했고 아직 어린 아들을 돌봐야 했습니다. 삶은 사막과 같았습니다. 무미건조하고 아무 의미 없는 현실에 내던져진 것만 같았습니다. 자가용 비행기를 타다가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가 바로 저였습니다. 

사막에서 하루하루 살아보니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 만나게 된다는 말처럼, 어린 왕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너무 늦게 만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막에 쪼그려 앉아있던 어린 왕자를 이제야 발견했던 것입니다. 누구나 사막에 던져진다면 자기만의 어린 왕자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곳에선 다른 누구도 만날 수가 없으니까요. 

어린 왕자는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제게 많은 질문을 했습니다. 대부분은 저도 알 수 없는 질문들이었습니다. 제가 대답을 못하고 어물쩡거릴때마다 어린 왕자는 신기해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것들을 모를 수가 있는지 이해를 못하는 눈치였습니다. 어린 왕자가 했던 질문들은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아저씨가 제일 좋아하는 놀이는 무엇이야?"

"아저씨는 어떤 꽃을 제일 좋아해?"

"아저씨가 눈물을 흘리는건 왜 그런 거야?" 

"아저씨는 왜 어른이 되었어?"

또 어린 왕자는 부탁도 많이 했습니다.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부탁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막에서도 살아야 할 삶이 있거든요. 하루는 이런 부탁도 했습니다. 어린 왕자는 한눈팔지 말고 오로지 자기와 놀아달라고 떼를 썼습니다. 제게는 도와주어야 할 아내와 돌봐야 할 아들이 있어 너와 놀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루는 말도 안 되는 캠핑카를 사서 놀러 가자고 했습니다. 저도 정말 떠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고 묻는 어린 왕자에게 저는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난 돈이 충분히 없어. 내가 하고 싶다고 아무렇게나 써서는 안된다구!"

그만 어린 왕자에게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사실 그건 어린 왕자에게 화를 낸 것이 아니라 지금의 저에게 화를 낸 것이었지만 어린 왕자는 너무 슬퍼했습니다. 어린 왕자는 눈물을 흘리며 제게 말했습니다. 

"나는 어른이 되면 아저씨처럼은 안될 거야."

저는 그 대답을 듣고 너무 슬퍼졌습니다. 제 눈에도 눈물이 고였습니다.

"미안. 네게 화를 내려던 것이 아닌데, 소리가 커졌어." 나는 어린 왕자를 꼭 안아주었습니다. 어린 왕자는 내 품에서 조용히 훌쩍댔습니다. 어린 왕자는 작고 따뜻했습니다. 어린 왕자를 만난 이 순간이 참 소중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어린 왕자를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요. 지금보다 더 어른이 되고 나면 더 많은 것들이 슬퍼질지도 모를 테니까요. 

저는 지금도 사막에서 비행기를 열심히 고치고 있습니다. 비행기를 고치게 되면 소설에서 그랬던 것처럼 제 작은 어린 왕자는 사라져 버리겠지요. 그리고 훗 날에 다시 사막에서 어린 왕자와 마주쳤을 때 그때는 조금만 슬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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