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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사의 일상 생활

휴직한 현직조종사의 지난 1년 근황, 코로나 시대 존버하기

저는 한 항공사에서 해외 노선만 다니는 대형 기종 조종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1년이 넘게 휴직 중입니다. 비행 로그를 보니 2020년 3월에 마지막 비행을 하였네요.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해외여행 수요가 80% 이상 급감했기 때문에 항공산업은 아직도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항공 안전법에서 정하는 최소 운항 경험을 충족하지 못해서 기종 type rating 자격도 상실했습니다. 항공 업황이 회복되어 다시 운항이 재개된다면 재자격 훈련과 심사를 통해 다시 자격을 취득해야 합니다. 언제 회복될지 모를 항공 수요를 기다리며 많은 항공 종사자들이 인내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절망적이었던 지난 1년간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뻘 글이지만 남겨보기로 했습니다.

작년 한해는 육아 대디로 살았습니다. 작년에 5살이던 아들은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새 유치원에 입학하기로 했었습니다. 두 달 남짓 유치원에 다니다가 인근 유치원생 감염 사례와 연일 늘어나는 확진자 수를 보며 고심 끝에 가정 보육을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일일 확진자수가 많음에도 아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있습니다만,  당시에는 가정보육을 결정하는 부모들이 많았습니다. 휴직으로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상황인데 유치원을 보내는 것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었고요. 맞벌이였던 우리 부부는 한순간에 아내 외벌이가 되었고 저는 일하는 아내를 돕기 위해 전담 육아를 하게 되었습니다. 

1년 이상 휴직을 하면서 쉬다보니 저는 '일'이란 것이 제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되더군요. 단순히 '돈을 벌고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었다면 휴직이 그리 힘들지 않았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벌어오는 돈이 많이 줄었지만 아내가 일을 더 하면서 가계에 수입은 크게 줄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일을 하면서 제가 사회에 작은 쓸모라도 있음을 느끼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집안 일과 육아도 참 힘든 일이고 의미 있습니다. 제 아들은 작년 한 해를 아빠와 온전히 함께 보내서 좋았을 것입니다. 저도 아들과 행복했고 추억도 많이 만들었고요. 그러나 저는 가끔씩 제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져 조금 힘들었습니다. 

내게 '조종사'라는 직업이 어떤 의미일까, 이 일 말고 다른 일을 하게 된다면 어떤 일을 해야하나, 등등 이런저런 답 없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그러다가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처음 비행을 배우던 당시의 기억까지 생각이 이어졌습니다. 미국으로 비행 교육을 받으러 가기 전 '비행'이라는 경험 해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에 대한 두려움에 잠 못 이루던 밤도 생각나고, 미국에서 교육받으면서 비행이 잘 안돼서 힘들게 하루하루 버텨내던 기억들 까지. 그때의 제가 지금의 제 모습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했습니다. 결국 조종사가 되어 목표를 이룬 것에 뿌듯해하며 지금의 모습을 부러워할지, 아니면 휴직하고 있는 모습에 실망할지. 그때 제가 느꼈던 간절함을 떠올려보면 아마 전자가 아닐까 합니다. 사실 저는 그때 바라던 모든 것들을 이미 이루었습니다. 저는 그 초심을 잊은 채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언젠가 지금의 제 상황을 부러워할 그런 때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코로나 팬데믹과 항공 산업이 어떻게 될지 저로서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제 미래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제 상황에 맞춰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수 밖에 없겠지요. 이게 참 당연한 소리지만 막상 마인드 컨트롤이 참 쉽지가 않습니다. 이게 누구 탓일까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코로나 탓인지, 코로나의 발원지인 중국의 탓인지, 국가나 정부의 탓인지, 항공사의 오너 탓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이 내 탓인지.

지금보다 더 힘들었던 11년전의 제가 찾았던 답은 이것이었습니다. "내가 나를 컨트롤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기계인 비행기를 컨트롤하겠다는 것이냐" 힘들 때마다 이 생각으로 버텼습니다. 그때도 지금도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나를 다스리는 것 밖에 없겠습니다. 이 길을 선택한 것은 제 자신이고 결국 책임은 제가 져야 합니다. 누구의 탓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제 탓인 것입니다.

조금 더 버텨보자고 희망회로를 돌려봅니다. 백신 접종도 이루어지고 있고 해외의 선진국들은 백신의 효과가 점점 가시화되고 있는 듯합니다. 지금도 힘들게 버티고 있을 많은 항공 관계자와 종사자분들도 조금 더 힘내셨으면 좋겠습니다.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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