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소형기를 타던 때에는 김해 국제공항으로 가는 스케줄이 자주 나왔습니다. 김해공항은 항덕들 사이에선 '김해탁'이라 불리는 공항입니다. 홍콩의 '카이탁'이라는 공항에 빗대어 쓰는 용어입니다. 홍콩의 카이탁 공항은 극악의 접근, 착륙 난이도로 베테랑 기장들만 투입되던 어려운 공항이었습니다. 현재는 폐쇄되었고, 홍콩의 신공항인 쳅랍콕 공항을 사용 중입니다.
김해공항에는 남북으로 이어진 활주로 2개가 있는데, (36R/18L , 36L/18R) 활주로의 북단에 '돗대산'이라는 이름의 산이 자리 잡고 있어 남풍이 불 때는 활주로 18R 선회접근(써클링 어프로치, Circling approach)을 해야 합니다. 써클링 어프로치는 활주로 주변에 장애물이 있을 때 활주로 반대편에서 접근을 하다가 지상 근처에서 활주로로 돌아 들어가는 (U 턴 형식으로) 착륙 방법입니다. ILS(Instrument Landing System)라고 불리는 정밀접근 방식과 비교하여 기동과 조작이 어렵기 때문에 많은 훈련과 교육이 필요합니다. 2002년 중국국제항공 129편 추락사고도 시정이 좋지 않은 날 써클링 어프로치를 하다가 돗대산에 비행기가 추락한 사고입니다. 이렇게 접근이 어렵고 사고도 났었기 때문에, 매해 두 번씩 받는 시뮬레이터 훈련에서 김해공항 써클링 어프로치는 필수 과목이었습니다.
2010년대 초반 제가 비행을 자주 갔던 김해공항은 많은 인파로 북적북적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옆에는 공항터미널을 증축하는 공사를 하고 있었고, 항공기들은 배정받은 gate를 받기 위해 대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해외여행 등의 항공 수요가 늘어나서 공항 이용객들이 크게 늘었던 것입니다. 조종사로서 그런 광경들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당시에도 여러 가지 논쟁이 있었던 '동남부 신공항' 이야기는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2002년의 중국 항공기 사고로 붉어진 안전 논란과, 폭증하는 동남권 공항 수요를 충족시킬 항공 인프라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가덕도신공항 문제에 대해서 현직 조종사로서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글을 한번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고려는 배제하고, 조종사로서 안전운항에 관련한 포인트만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Air China 129편 추락사고, 써클링 어프로치란?
먼저 '동남권 신공항' 문제의 시발점이었던 김해공항의 안전문제를 논하기 위해서 중국국제항공 129편(Air China 129) 추락사고가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해 조종사의 입장에서 조금 자세히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활주로는 바람 방향에 따라 이용 방향이 바뀝니다. 김해공항의 경우 북풍이 불면 36L , 36R 활주로를 사용하고, 남풍이 불면 18L, 18R 활주로를 사용합니다. 활주로 방향에 대한 이야기는 제가 쓴 글을 보시면 이해가 더 잘 되실 겁니다.
2016년 신공항 타당성 조사 용역을 맡았던 프랑스의 ADPi가 이용했던 김해공항 기상 관측소의 풍향 데이터에 따르면, 김해공항은 연중 83%의 기간에 북풍이, 17% 기간에는 남풍이 분다고 합니다. 제 경험상 김해공항에 착륙할 때면 거의 대부분 36쪽 활주로를 사용했습니다. 김해공항은 북풍이 불 때 활주로 36L(left), 36R(right)를 사용합니다. 바다 쪽에서부터 접근을 시작하는 이 방향의 활주로는 운용 시 특별한 사항이 없습니다. 바다 쪽에는 장애물이 없기 때문에 주로 여타 공항에서 사용하는 정밀계기접근 절차인 ILS(Instrument Landing System)를 사용해 착륙합니다. 제 경험을 바탕으로 말씀드리자면, 이 방향에서 접근하면 돌풍과 같은 요소도 많이 없이 무난한 비행이 됩니다. 문제는 나머지 17%의 남풍이 불 때 사용하는 활주로 18L/R입니다. 민항기는 착륙용으로 활주로 18R를 사용하는데, 돗대산이 접근 방향에 있기 때문에 써클링 어프로치를 해야 합니다.
2002년 4월 15일 중국국제항공 129편의 기장은 30세의 우신루(吳新祿)로, 사고기였던 767 기장 시간이 289시간에 불과했고, 부기장 두 명은 자격을 취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저 경력 조종사들이었습니다. 기장은 김해공항 이착륙 경험이 있었지만, ILS로 접근하는 36쪽 활주로만 사용해보았고 써클링 어프로치를 하는 18쪽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당시 김해공항은 시정이 좋지 않고 시속 17노트의 강한 남풍이 부는 상황이었습니다. 관제사로부터 사용 활주로가 18이며 써클링 어프로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조종사들은 당황하였습니다. 한국 조종사들은 김해공항에 대한 훈련과 선후배 조종사들 경험이 전달되면서 김해공항 써클링 어프로치에 대한 절차가 확실히 있었습니다. 활주로를 육안으로 확인하면서 활주로의 수직 방향에 위치할 때 20초를 진행 후 선회를 시작하고, 적어도 공항 앞에 있는 도로 안쪽으로 돌아야 돗대산과의 안전거리가 확보된다는 경험적 절차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 조종사들은 그런 절차를 잘 몰랐고, 김해 써클링 어프로치를 처음 해봤던 지라, 30초가 지나도록 선회를 시작하지 않았고, 선회각도 지나치게 좁아서 산악지역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더 불행했던 것은 안개로 인해 시정이 좋지 않아 비행기가 산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써클링 어프로치 절차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은 언제든 활주로의 육안 확인이 안 될 경우 즉시 복행(Go Around)을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중국 조종사들은 이런 기본적인 절차를 지키지 않았고 아쉽게도 산에 추락하고 맙니다.
이 사고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학계와 현장에서는 항공기 사고는 chain of error라고 해서, 단 한 가지의 실수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실수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나 발생한다고 여겨집니다. 직접적으로는 이 사고의 원인을 조종사의 절차 미준수로 생각할 수 있겠으나, 조금 더 깊이 이 사고를 살펴보면, 다양한 원인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당시 김해 국제공항에는 MSAW(minimum safe altitude warning system)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MSAW는 항공기가 안전 고도 이하로 지상에 접근하면 경고해주는 장치입니다. 사고 당시에도 이 장치가 경고를 울렸으나 워낙 이 장치가 오작동이 많아 관제사가 조종사에게 잘못된 접근을 경고하는 등의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저 경력 조종사 관리에 실패한 항공사(대부분 항공사들은 저경력 조종사들을 보완하기 위해 저경력 기장- 고경력 부기장 /또는 고경력 기장- 저경력 부기장 같은 식으로 경력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사고기가 구형 기체(B767)로 지상 접근을 경고해 주는 EGPWS 장치가 없었던 점 등을 들고 있습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는 항공사는 조종사의 경력관리와 더불어 개별 공항에 대해서도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김해공항은 특수공항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특수공항은 저경력 조종사는 숙달되기 전까지는 스케줄 배정을 하지 않고 있고, 시뮬레이터 등 특별 교육을 받아야 스케쥴 배정이 되는 등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김해 공항은 이렇게 특별 교육과 관리를 하는 '특수 공항'인 것입니다. 즉 이 사고의 배경에 김해공항이라는 특수한 환경적 요인도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환경이 조종사의 과실을 변명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조종사는 주어진 환경에서 안전하게 항공기를 운용하는 것이 주 업무 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명 피해가 난 사고가 일어났다면 후속 조치는 필요합니다.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조종사로서 제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동남부 신공항' 논의에서 기존 김해공항의 돗대산 장애물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해결이 되어야 합니다. 가덕도나 기타 장소에 신공항을 만들어 전 공항기능을 이전하든지, 또는 이제는 폐기된 2016년 '김해신공항' 사업이든지 말입니다.
폐기된 프로젝트, '김해신공항' 사업
2016년 국토교통부는 세계 3대 공항 설계 전문그룹인 프랑스 파리 공항공단 엔지니어링(ADPi)에 연구를 의뢰했습니다. ADPi는 가덕도나 밀양에 신공항을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돗대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새로운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기존 김해공항에 새로운 활주로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김해공항의 남북방향 활주로에 남동~서북 방향의 활주로를 추가로 건설해 'V'자 형으로 활주로를 배치하는 방법입니다. 이 새로운 활주로를 착륙 활주로로 사용하면 기존의 활주로는 이륙용으로 사용하여 서클링 어프로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2002년 중국항공의 사고가 난 이래 '동남권 신공항' 문제는 지역 사회의 이해관계와 다양한 정치적, 경제적 논쟁 끝에 2016년 ADPi의 연구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김해신공항' 사업이 확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정권과 정치지형이 바뀌면서 이 사업은 폐기됩니다. 2021년 2월 26일,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면서 김해신공항 사업은 폐기되고, 가덕도신공항은 법률에 따라 건설되는 국책사업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제가 조종사로서 우려하는 부분은 기존 김해공항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부분입니다. 정부와 여당, 부산시 등은 가덕도신공항의 공사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활주로 1개 만을 공사하려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습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김해공항의 국내선은 그대로 두고, 가덕도신공항에 국제선만 운용하겠다는 방안입니다. 부산시 역시 대외용 '가덕신공항' 건설 자료에서 가덕도신공항과 김해공항의 동시 운영을 시사했습니다.
'동남권 신공항'문제의 첫 시작은 2002년의 사고였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김해공항의 '돗대산' 문제를 꼭 해결해야 합니다. 신공항을 건설하겠다면서 국내선은 김해공항에 남겨놓는다면, 김해공항 국내선은 여전히 안전 위험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생각하기에는 반쪽짜리 해결책으로 여겨집니다.
또한 가덕도신공항의 2016년 방안대로 동-서로 놓일 경우, 기존의 김해공항의 진출입로와 겹쳐 관제와 항공기 운항에 위험요소가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직 가덕도신공항의 활주로 방향이나 공항의 위치 등이 확정된 것은 아니나 김해공항과 가덕도신공항이 공존할 경우 이런 문제점들도 고려해야 할 사항입니다.
여야 정치적 견해를 떠나서, 인명 피해 사고로 인해 첫 논의가 시작된 사안에 대해 이렇게 안전 문제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상황이 조종사로서 아쉽습니다. 김해공항의 '돗대산'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 같은 사고를 방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2016년의 '김해신공항' 안을 무조건 찬성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가덕도신공항의 무조건 반대도 아닙니다. 위에서도 기술했듯 가덕도신공항은 활주로 방향이나, 활주로를 몇 개로 할 것인지, 김해공항과 분산을 할 것인지 등의 세부사항이 아직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런 정책 결정에 조종사, 관제사, 공항 운영 전문가들이 참여해서 그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현직 조종사의 의견 한 줄 요약 :
'가덕도신공항' 세부설계는 김해공항의 '돗대산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방식으로 전문가들의 의견 반영을 통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비행기 아는 척 해보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항공기 자동 착륙 기술, CAT2 / 3 란 무엇일까? (0) | 2021.03.17 |
---|---|
V1 이란 무엇일까? (10) | 2021.03.15 |
비행기 날개 끝이 꺾인 이유는? (2) | 2021.03.10 |
인천 공항에는 활주로가 몇 개 있나요? feat. 활주로 번호 (0) | 2021.03.08 |
[에어버스vs보잉] 어떤 비행기가 더 좋나요? feat.밥상 (5) | 2021.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