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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아는 척 해보자

인천 공항에는 활주로가 몇 개 있나요? feat. 활주로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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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문득 인천 공항에는 활주로가 몇 개 있는지 아느냐고 물어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친구는 잠시 생각하다가, "트래픽이 굉장히 많은데 한 20~30개는 있어야 하지 않아?"라고 대답하더라구요. 인천 공항에는 활주로가 총 3개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1개의 활주로를 추가하기 위해 공사중입니다. 조종사인 저는 활주로에 대해 너무 익숙해서, 항공 관계자가 아니신 분들의 생각을 듣고 좀 흥미로웠습니다. 그래서 활주로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 

로스 엔젤레스 공항 RUNWAY 24L 에서 이륙하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는 항공기들 (출처: AIRLINERS.ENT)

 

활주로 번호, 37 이상의 숫자는 없다.

긴 활주로의 양 끝에는 각각 01~36까지 자연수로 된 번호가 적혀 있습니다. 37이상의 숫자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 번호들은 항상 18만큼 차이가 납니다. 이 숫자들이 무엇일까요? 바로 나침반에 표시된 방위각을 나타내는 숫자들입니다. 000도~ 360도까지 숫자가 있는데, 첫째 자리 숫자를 떼고 앞의 두 숫자만 사용해 번호를 붙입니다. 인천 공항의 세 번째 활주로를 예로 들면, 긴 활주로의 양 끝에 16과 34가 적혀 있습니다. 활주로의 방향이 160도,  반대편 방향이 340도 이므로(반대 방향이니까 180도 차이가 나겠죠?) 활주로 16, 활주로 34 가 됩니다. 

HEADING INDICATOR의 모습. 북쪽이 360도, 남쪽이 180도 이다. 

 

인천공항 세번째 활주로의 모습. 양 끝쪽에 16와 34가 적혀 있다. 방위각 160도와 340도를 의미한다. (정확히는 153도, 333도) 출처: 구글어스

또 활주로 번호 옆에 L,R,C 가 적혀 있는 공항도 있습니다. 인천 공항의 첫 번째, 두 번째 활주로에도 15L, 15R // 33L, 33R 가 적혀 있습니다. 눈치 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Left, Right , Center의 약자입니다. 트래픽이 많고 복잡한 공항에는 복수의 활주로가 인접해서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각각의 활주로를 구분하기 위해서 왼쪽 활주로, 오른쪽 활주로를 나타내기 위해 L, R를 붙입니다. 조종사와 관제사가 교신을 할 때는 "RUNWAY ONE-FIVE -LEFT" , "RUNWAY ONE-FIVE-RIGHT"로 읽습니다. 항공관제에서는 15를 FIFTEEN이라고 읽지 않고 ONE-FIVE로 읽습니다. FIFTY(50)와 발음이 비슷해 혼란을 주기 때문에 명확히 하기 위해서 숫자를 따로 읽는 것입니다. 

 

인천 공항 복수 활주로 "RUNWAY ONE-FIVE-LEFT"와 "RUNWAY ONE-FIVE-RIGHT"의 모습 (출처:구글어스)

활주로는 항공기의 이착륙을 위해 필수적입니다. 항공기가 충분한 속력을 얻어야 이륙을 할 수 있고, 착륙 후에는 속도를 충분히 감속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활주로의 길이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조종사는 매 비행마다 온도, 바람의 방향, 항공기의 무게 등을 이용해 그 날 항공기 이륙을 위해 필요한 활주로의 길이를 구합니다. 그리고 오늘 이용할 활주로가 충분한 길이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합니다. 항공기가 맞바람을 받으면 비교적 짧은 활주로에서도 이륙할 수 있습니다. 반면 뒷바람을 받으면 이륙하는데 필요한 활주로 길이가 길어집니다. 그래서 공항은 바람의 방향에 따라 이용하는 활주로의 방향을 바꿉니다.  그래서 활주로의 번호가 양 끝에 하나씩, 총 두 개로 이루어 진 것입니다. 

 

공항을 설계할 때 해당 지역의 주 바람 방향을 고려해서 활주로 방향을 정합니다. 주변의 장애물과 인접지역 공항의 활주로 방향도 고려 대상입니다. 편서풍 대에 위치한 우리나라는 주로 서풍이 많이 불고, 특히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에 위치하여 계절풍 기후의 특성이 있습니다. 겨울에는 시베리아 고기압의 영향으로 북서풍이 불고, 여름에는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으로 남서, 남동풍 게열의 남풍이 붑니다. 그래서 인천 공항의 주 사용 활주로도 북서 방향의 33L , 33R, 34이고 여름에는 15L, R ,16 활주로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긴 활주로, 활주로가 가장 많은 공항

 

고지대나 온도가 높은 곳에 있는 공항은 활주로 길이가 길어야 합니다. 상대적으로 공기의 밀도가 낮기 때문에 엔진이 흡입하는 공기 분자도 수도 적기 때문입니다. 엔진의 힘이 다른 곳에 비해 약하단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비행기가 가속을 하기 위해 필요한 거리도 길어야 합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활주로의 길이도 길어지는 추세라고 합니다. 실제로 인천공항의 3번째 활주로(RUNWAY 16/34)는 4000m로 1,2번째 활주로의 3750m보다 더 긴데 이것은 온난화로 인해 평균 기온이 3도 정도 더 높아질 것을 예상하여 설계한 것이라고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긴 활주로는 미국의 덴버공항에 있습니다. 무려 4877m입니다. 로키 산맥에 위치한 덴버는 표고가 1600m에 이르며(공항표고는 1655m) 미국의 주요 도시 중 가장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마일 하이 시티(Mile-High City, 1마일이 1610m)라는 별명이 있는 곳입니다. 고도가 높기 때문에 활주로도 길어야 했던 것입니다.

 

2021년 3월 현재 기준 활주로가 가장 많은 공항은 시카고의 오헤어 공항(CHICAGO O'HARE INTL AIRPORT)입니다. 무려 8개의 활주로가 있습니다. 저는 조종사로서 가본적은 없지만... 이런 곳에서는 택시가 정말 복잡하고 어렵겠네요. 관제사의 지시를 명확히 듣고 확실치 않으면 재확인(CONFIRM) 받아가며 택시를 해야 하겠습니다.

복잡한 시카고 공항의 다이어 그램

 

안전과 직결되는 활주로 관리

인천 공항의 관제를 듣고 있다보면, 가끔씩, 관제사가 주파수 전체의 조종사들에게 안내를 해줄 때가 있습니다. 

관제사 : "RUNWAY INSPECTION IN PROGRESS."

활주로 점검이 진행중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때 활주로를 유심히 관찰하면, 빨간색 SUV 한대가 활주로 위를 달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차량이 활주로 점검 차량입니다. 하루 4번, 포장면의 파손 상태와 이물질 여부를 점검합니다. 그리고 비행장 주변에는 청소 차량과 자석 막대기 등을 이용해 콘크리트 파편이나 금속 물질을 찾아 제거합니다. 공항 내에 이물질들을 FOD(Foreign Object Debris)라고 부릅니다. 최근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서는 공항 내 FOD로 인해 매년 전 세계적으로 40억 달러가량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고 집계하였습니다. 경제적 손실 뿐만 아니라, 2000년 6월 17일,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이륙 직후 발생한 콩코드 추락 사고, 2007년 2월 1일, 도쿄 나리타 공항에서 발생한 4대의 항공기 타이어 파손 사고 등 FOD는 안전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공항당국과 항공사에서는 FOD 방지 노력을 체계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활주로 주변의 관리에 FOD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조류 등의 동식물입니다. 영화 '설리-허드슨강의 기적'에서도 나왔던 것처럼 조류 충돌은 큰 사고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한국공항공사는 조류퇴치팀(BAT)을 운영하여 버드 스트라이크의 위험을 방지하고 있습니다.  

한국공항공사 조류퇴치 요원(BAT)과, 폭발음을 내는 장치의 모습. 조류 퇴치를 위한 노력들. (출처:서울신문 기사)


제가 훈련을 받았던 미국의 작은 시골 공항에서는 활주로에 동물들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관제사가 다급하게 활주로에 "COYOTE가 나타났으니 모든 항공기는 STOP하라"고 지시를 내렸는데 "카요리"와 비슷하게 발음되는 COYOTE를 못알아 들어서 당황했던 기억이 나네요. 

 

활주로에 대한 알아두면 쓸데없는 잡학지식을 써보았습니다. 다음 번 비행기를 타실때,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이동하는 동안 이런 내용들을 떠올리신다면 조금 더 재밌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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