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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아는 척 해보자

[에어버스vs보잉] 어떤 비행기가 더 좋나요? feat.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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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과 에어버스. 항공기 제작사의 두 양대 산맥입니다. 많은 분들이 어느 쪽 비행기가 더 좋나요? 하고 물어보십니다. 굳이 대답해야 한다면 전 제가 타고 있는 에어버스가 좋다고 답하겠습니다. 왜냐구요? 조종석 앞에 밥상이 있으니까요. 

 

에어버스의 Tray table. 일명 밥상

대부분의 조종사들은 자기가 모는 기종에 대해 자부심이 있습니다. 조종사들 본인은 해당 기종과 제작사에 대해서 불평을 하고 심지어 욕을 하더라도, 타사 사람이 욕하는 것은 못 참습니다. 회사 직원들이 서로 자기 회사욕을 하면서, 정작 다른 회사 사람들이 자기가 다니는 회사 욕을 하면 기분이 나빠지는 그런 심리와 비슷합니다. 혹은 시어머니가 아들 욕을 하면서 맞장구치는 며느리를 미워하는 심리라고 할까요. 그래서 이런 제작사 비교를 하는 것은 조심스럽습니다.

 

비행기에 컴퓨터를 넣은 보잉, 컴퓨터에 날개를 붙인 에어버스

 

"비행기에 컴퓨터를 넣은 보잉, 컴퓨터에 날개를 붙인 에어버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로 보잉 계열 조종사나 관계자들이 에어버스와 에어버스 조종사들을 약간 무시하는 뉘앙스로 하는 말입니다. 이런 말들을 언급하는 것도 제가 에어버스 조종사니까 가능한 일입니다. 제가 타는 비행기를 욕하는 것은 저에게만 허용된 일이에요. 제가 보잉을 타면서 저런 말을 했다면 에어버스 조종사들에게 비난받을 것입니다.

 

(주로 보잉조종사들이) 조종 가방에 달고 다니는 태그들. 보잉 조종사들도 보잉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비행기에 컴퓨터를 넣은 보잉, 컴퓨터에 날개를 붙인 에어버스" 는 일정 부분 맞는 측면이 있긴 합니다. 이것은 두 제작사의 디자인 철학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조종사에게 어느 정도의 권한을 줄 것인가에서 차이가 납니다. 에어버스는 조종사의 input을 컴퓨터가 검증하고 제한치(Limitation Envelope)를 벗어나면 따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상 작동할 때(Normal Law) 조종사가 아무리 괴팍하게 사이드 스틱을 흔들어도 실속(stall), 과속(Over speed), 급선회(steep turn) 같은 기동을 할 수 없습니다. Alpha Floor, low energy protection,over speed protection, High pitch protection, bank angle protection 등 많은 protection들이 조종사의 과한 조작에 대비해 항공기를 보호해 주려고 대기하고 있습니다. 이는 조종사에게 완전한 조종 권한이 없음을 말합니다. 여기에 에어버스사가 조종사를 대하는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에어버스가 많은 항공 사고들을 분석해 본 결과 인간의 오류(Human error)로 인한 사고가 대부분의 경우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오류들을 수정하기 위한 디자인을 한 것입니다. 반면 보잉은 조종사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합니다. 이런 차이는 지난번 글로 소개드렸던 플라이-바이-와이어 시스템(Fly-By-Wire system,FBW) 에서도 드러납니다. 

 

https://freedompilot.tistory.com/10

 

플라이 바이 와이어(Fly-By-Wire), 코딩의 신이 남긴 유산

조종사는 어떻게 그 큰 비행기를 움직일 수 있는 걸까? 조종사는 비행기를 어떻게 조종할 수 있을까요? 물론 스틱이나 요크같은 조종간을 이용해 비행기를 조종합니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조종

freepilot.kr

 

이 글에서 최초의 digital FBW를 채택한 민항기가 에어버스사의 A320이라는 점을 말씀드렸죠. 에어버스 비행기는 조종사의 input을  flight computer가 분석해 안전한지 확인하고 전달합니다. 보잉은 에어버스보다 10년 뒤인 1994년에야 플라이 바이 와이어 기술을 채택했지만(B777기종 입니다), 조종사가 FBW를 무시하고 조종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습니다. 조종사를 더 믿고 항공기 시스템은 조종사의 백업을 위해 존재한다는 철학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요크(Yoke)와 사이드스틱(Sidestick)

 

보잉은 전통적인 조종간 형태인 요크(Yoke)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에어버스는 사이드 스틱(Side stick)을 사용합니다. 각각이 장단점이 있습니다. 요크는 두 손으로 잡을 수 있습니다. B737 같은 경우 FBW가 아니기 때문에 고장으로 인해 유압이 손실되거나 또는 트림이 잘 안맞았을 경우 요크를 쥐는 손에 힘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때 꽤 묵직한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파워 레버(Throttle)는 부기장에게 맡기고 두손으로 요크를 쥐고 조종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측석과 좌측석의 요크가 서로 같이 연동해서 똑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각자 맞은편 상대방의 조작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훈련 중 교관이 수정해 주기도 편합니다. 하지만 요크는 구조상 조종사의 양 다리 사이로 요크를 고정하는 기둥이 있어야 합니다. 조종석의 공간을 차지하기 때문에 불편함이 있습니다. 

 

에어버스는 A320 기종 이후 A330,A340,A380,A350 등 모든 기종에 사이드 스틱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컴퓨터 게임을 할 때 사용하는 조이스틱(Joy Stick)이라고 놀림을 받기도 하지만(...) 조이스틱 아닙니다. '사이드 스틱'입니다. 조이스틱이라고 하면 에어버스 조종사들이 싫어합니다.

 

사이드 스틱은 부피가 작고 손에 힘이 안들어 갑니다. 사이드 스틱은 직접 유압과 연결되거나 항공기의 조종면과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일정한 느낌으로 힘이 들어갑니다. 트림(손에 힘을 덜어주기 위해 스태빌라이저를 조정하는 것)을 맞출 필요도 없습니다. 실제로 작동해 보면 스틱의 느낌만으로는 항공기의 피드백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저 스프링과 댐퍼의 느낌으로 제자리에 돌아오는 반동만이 느껴질 뿐입니다. 그리고 좌측석과 우측석의 모션도 서로 감지할 수 없습니다. 좌측석이 아무리 스틱을 흔들어도 우측석의 스틱은 정지해 있습니다. 두 스틱을 동시에 사용하면 두 input이 합쳐져서 반응합니다. 그래서 에어버스는 두 스틱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사이드 스틱은 부피가 작기 때문에 조종석의 공간을 좀 더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트레이 테이블(Tray Table)이라는 것을 설치해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에어버스 조종사들은 이것을 '밥상'이라는 용어로 부르곤 합니다.

 

튼튼한 미제와 실용성을 강조한 유럽산

사실 저는 보잉 비행기를 실제로 조종해 본적은 없습니다. 다만 시뮬레이터를 이용해 조종해 볼 경험을 몇 번 가져보았을 뿐입니다. 그래서 보잉에 관한 이야기는 일부 부정확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보잉 기종과 에어버스 기종을 둘 다 경험한 다른 조종사들의 말들을 들어보면, '튼튼한 보잉을 보면 역시 기계는 미제란 생각이 든다.' 같은 류의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합니다. 실제로 조종석에서 봤을 때나, 승객으로 탑승해서 목격한 갤리를 보았을때 보잉은 넓적넓적하고, 스위치들도 철제로 만들어져서 튼튼해 보입니다. 반면에 에어버스는 경량화를 위해서 철제를 줄이고 스위치들과 내장이 모두 플라스틱 재질입니다. 고급진 느낌은 확실히 떨어져 보입니다. 상승 성능도 보잉은 이륙 후 시원 시원하게 순항 고도까지 올라가는 반면 에어버스 비행기는 천천히 순항 고도에 도달합니다. 연료 효율을 위해서입니다. 관제사 입장에서는 비행기가 지정한 고도까지 빨리 올라가서 타 항공기와의 고도 분리도 이른 시간에 시키고, 관제 이양도 빨리 시키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에어버스 조종사들은 관제사에게 자주 질문을 받습니다. 

관제사 : When can you reach your cruise altitude? (언제 순항고도에 올라갈 수 있습니까?)

관제사 : Expedite climb. (상승 속도를 올려라)

관제사 : Climb and maintain Fl350 in 40 mile. (40마일 내에 35000피트로 상승해라.)

(...)

에어버스가 상승 연료효율이 좋다는 이야기는 반대로 말하자면, 보잉 비행기들은 그만큼 상승 추력의 여유분이 많다는 것이고 조종사들이 운용하는데 여지가 조금 더 있다는 의미입니다. 장단점이 있다란 것입니다.


이건 사실 고백하는건데, 확실히 보잉이 조종사의 편의와 권한을 더 보장해 준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조종사의 판단과 조작의 여지도 더 넓고, 그 이야기는 달리 표현하자면 조종사를 그만큼 믿는다는 것이겠지요. 에어버스는 조종사보다는 항공사의 이익 극대화에 더 중점을 두고 제작하였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사견임. 저는 에어버스 조종사니까 에어버스 불만을 좀 얘기해도 될겁니다.) 조종사 관리와 교육의 편의성, 그리고 연료 효율 같은 항공사 입장에서 매력적인 요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제겐 밥상이 있으니까요.

 

ps. 보잉 조종사들은 밥상이 없는데 어떻게 밥을 먹냐는 질문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무릎에 올려놓고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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