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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종사 도전기/사업용조종사(CPL)

[CPL ep.8] 비행 교육과 인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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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사업용 과정도 마지막을 향해 다다르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Parker와의 비행을 사력을 다해 견디고 있었다. 그의 무례한 태도와 말도 안 되는 요구들 - 특히 approach 단계에서 power 조작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을 견디며 꾸역꾸역 비행을 하고 있었다. 

이제 미국에 온지도 9개월 남짓, 겨울에 왔던 디어밸리는 무더운 여름을 지나 조금은 선선해진 가을로 접어들고 있었다. 애리조나의 가을은 한낮에는 30도를 웃도는 날씨로 무덥지만 일교차가 커 아침저녁으로는 15도 정도까지 떨어진다. 여름과 마찬가지로 교관들과 학생들은 무더운 낮에 비행하기보다는 새벽-아침 시간에 비행을 미리 하고 낮에는 쉬는 것을 선호했다. 그래서 대부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했다. 물론 나도 그랬다.

애리조나

당시의 나는 여유가 없었다. 한국,고향에 대한 향수나 개인적인 감상에 젖어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죽을둥말둥 비행에 전념하며 투지를 불태우지도 못했다. 비행에 대한 압박감과, Parker에 대한 부담감, 그리고 상황이 주는 거대한 불안함을 해소시키지 못한 채 그냥 하루하루 말 그대로 버텼다. '존버'하고 있었다. 

그중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가장 컸다. Parker는 최상훈과 나를 비교하면서 나를 약자로 찍은 것 같았다. 나를 대하는 태도에서 인격적 대우를 하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그를 교관으로 대했고 기를 쓰고 대들거나 저항하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적극적으로 항의하고 부딪혔다면 많이 달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편조인 최상훈과는 한집에서 같이 살면서 여러가지로 부딪혔다. 청소, 설거지, 함께 쓰던 자동차, 식사 등등. 처음에는 함께 여러 가지 것들을 했다. 요리를 최상훈이 하면 설거지는 내가 하고, 같이 청소도 하고 등등. 그러다가 점점 부딪히는 일들이 많아지면서 서로 각자 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밥도 각자 해 먹고, 청소도 자기 영역만 하고... 그러다가 집에서는 거의 대화도 하지 않게 되었다. 같이 살면서도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닫고 필요한 말, 사무적인 말만 하는 사이가 되었다. 다 큰 성인이 같은 공간에서 9개월 넘게 같이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특히 군대처럼 위계서열도 없는 상황에서는 서로에 대한 배려가 정말 중요하다. 그때는 비행 관련한 스트레스 때문에 인간관계 같은 것들이 우선순위에서 후순위로 밀려있었다.

저녁에는 동기모임도 종종가지곤 했다. 언제부턴가 나는 동기모임에도 참석을 안 했다. 그들과 나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한 번도 fail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몇 번이나 fail을 했고, 그들처럼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을 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맞는 말이기도 했다. 나는 이제 단 한 번의 fail의 여유도 남아있지 않았고, 그들은 최악의 경우 한번 떨어지더라도 다시 재시험을 보고 합격하면 되는 것이었다. 

지난 자가용조종사 PPL 시절 마음의 앙금이 남아있기도 했다. 문정호(자가용 ep.11 조작편 참조), 윤성범(자가용 ep.13 왈리의 과외 편 참조) 과는 마음의 담을 쌓고 서먹한 관계로 남았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들에 대한 원망이나 부정적인 감정을 마음에 담아두기에는 내 여력이 너무 없었다. 비행하기에도 힘들었고, 그냥 하루하루 버텨내는 것이 힘들었던 때였다. 문정호나 윤성범에게 먼저 말을 걸거나 다가가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겉으로는 인사하고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했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나도 많이 성숙해졌고, 조금 더 어른이 되었다. 그 때를 객관적으로 돌이켜 볼 수 있게 되었다. 생각도 더 발전하고, 여러모로 여유도 많이 생겼다. 오랜 옛기억들을 떠올리며 자기성찰을 해보니, 결국 이 모든 것들의 원인은 나였다. 상황을 극복 할 수 있었던 여러 포인트들이 있었다. 물론 그 과정을 통해 내가 성장하고 배운것이겠지만, 만약 내가 그때의 나로 돌아간다면 적어도 그렇게 소극적이고 무력하게 버티기만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부끄러운 흑역사들이지만, 그 기억들을 예쁘게 장식하고 외면한다면 발전이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나는 28살의 나보다 더 많이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비행 외적으로도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들이 많았다.특히 교관인 Parker와의 관계는 언제 터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시한폭탄과 같은 상태였다. 그리고 결국 그것이 터지게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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