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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종사 도전기/자가용조종사(PPL)

[ep.2]조종사 신체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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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전형은 길었다. 거의 반년에 걸쳐 전형이 이뤄졌다. 자기소개서, 인적성검사, 영어시험, 실무진 면접, 영어면접, 1차신체검사, 임원면접, 2차신체검사 이런 식으로 잘게 쪼개서 전형이 이뤄졌는데 각 단계 사이에 대략 1달 정도씩 걸렸다. 이렇게 오래 걸리는 입사전형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다른 회사들은 한 두달이면 결과가 나왔던 것 같은데. 지원자 입장에서는 한 단계, 한 단계가 피 말리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더군다나 서울에 연고가 없었던 나는 매 전형 때 마다 상경을 해야했다. 서울 지리에 밝지도 않았고, 서울에 오는 것이 마냥 좋았던 촌놈이라 처음에는 약간 설레고 들뜬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전형이 진행 될수록 서울에 한번 올라갔다 내려가는것이 부담스러워졌다. 비행기를 보러 김포공항을 가는 것은 좋았지만 김포공항(의 근처에 있는 회사 본사)은 서울의 외곽에 있는 곳이었다. 새벽같이 서울로 와서 또 한번 서울을 가로질러 김포 공항에 와야했다. 그렇게 각 전형을 어렵사리, 가까스레, 꾸역꾸역 넘어서 신체검사 전형까지 왔다.

조종사 신체검사

1차 신체검사는 사내의 의료팀에서 실시했다. 이곳에서도 창문으로 비행기의 이착륙이 보였다. 오랜 전형을 거치면서 익숙한 지원자들도 생겼다. 그들과 인사도 하고 서로의 상황에 대해 간간히 이야기도 하며 의료팀 대기실에서 앉아 있었다. 옆에서는 현직 조종사 분들이 1년에 한번씩 받는 신체 검사(Medical Check)를 받고 있기도 했다.

조종사가 되기 위해서는 '항공종사자 신체증명 1종'이 필요하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건강한 20대 청년이라면 큰 무리없이 취득할 수 있다. 그리고 매년 한 번씩 이상이 없는지 검사를 받고 갱신해야 한다. 몸에 이상이 생겨 신체증명 1종을 받지 못하면 조종사업무를 할 수 없다. 그러나 조종사 취업에서 신검 1종은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이다. 즉, 취업할때에는 이 기준에 들기만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타이트한 신체검사를 통해 지원자들을 가려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원자 입장에서는 신체 검사 하나하나가 시험처럼 느껴진다. 시력 검사표의 한 줄을 더 읽어내고, 청각 검사에서 더 미세한 소리를 듣고, 심폐기능이 더 좋을수록 좋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입사 전형에서 점수 채점이 어떻게 되는지는 아직도 모르지만 그 때 지원자들은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항공사의 조종사로서 근무하기 위해서는 항공종사자 신체증명 제1종이 필요하고, 유효기간은 12개월이다.

현재는 저비용항공사(LCC)같은 경우 외부 의료기관(항공종사자 관련 자격을 취득한 전문의가 운영하는 의료기관)에서 신검을 받아서 1급을 받으면 그것으로 신체검사를 대체하는 식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다. 라식, 라섹등의 시력 교정수술도 허용하는 등 신체검사의 장벽이 많이 낮아졌다. 하지만 10여년 전만 해도 LCC가 많지 않았고 자체 의료원을 운영하는 항공사의 경우에는 신검 기준이 높던 시절이었다.

혈액검사, X-ray, 시력, 청력, 심폐능력, 복부 초음파 등 여러 검사를 했다. 특히 시력 검사는 기본적인 시력검사에 주변시, 안압, 각막스캔 등의 검사를 했다. 처음 해보는 검사들이 많아서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결과가 잘못 나오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문제는 복부초음파를 할 때였다. 간호사선생님이 반복해서 옆구리 부분을 촬영하셨다. 그리고 무언가를 기입하셨다.

며칠 후 결과가 나왔다. 간에 혈관종으로 보이는 것이 있으니 대학병원에서 소견서를 첨부하라는 메일이 와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당장 대학병원에 검사를 하러 갔다. 의사선생님은 혈관종이란 양성종양인데 대부분 선천적이고 흔한 종양이라고 하셨다. 수술이나 치료를 할 것은 아니고, 회사에서 요구하니 혈관종이라는 소견서도 써 주셨다. 우선 생명에 지장은 없다고 하니 안심은 됐다. 하지만 신체 건강한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며칠을 결과를 기다렸다. 다행히 2차 신검 대상자 명단에 내 이름이 있었다.

2차 신검은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진행했다. 영화에서나 보던 전깃줄을 꽂고 러닝머신에서 뛰면서 검사를 하는 운동부하검사나 머리에 전선을 붙이고 하는 뇌파검사 같은 것들을 했다.

운동부하검사와 뇌파검사

후기 같은 것들을 보니까 2차 신검까지 오면 거의 대부분 합격을 한다고 했다. 지원자가 수백명단위였다고 들었는데 2차 신검을 받는 대학병원에는 십여명의 지원자들만 남았다. 이제 지원자들도 여유가 있어보였다. 신검을 다 받고 근처 대학가의 호프집에서 낮술을 하며 서로 이야기하고 연락처도 주고 받았다.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들뜬 마음으로 헤어졌다. 일주일 후면 최종결과발표가 나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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