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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항공사고수사대

세월호 7주기. 현직 항공기 조종사의 안전에 대한 생각. Feat. 아시아나214편 샌프란시스코 추락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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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나무위키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 세월호가 침몰한 지 7년이 흘렀습니다. 

 

당시 저는 항공사의 소형기 부기장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국내선 스케줄들이 많았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국내선 비행은 김포-제주를 왕복하는 스케줄 들이었습니다. 서울 김포에서 제주로 비행을 하면 진도 앞바다를 조종석 창문 너머로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야간 비행을 할 경우에는 수색 작업을 위한 섬광탄이 공중에서 계속해서 번쩍이며 주변을 밝히고 있었기 때문에 '아 저쪽 방향이 진도 앞바다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섬광탄은 그 후로 몇 달간 어두운 밤하늘을 밝혔습니다. 착륙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멀리 보이는 진도 앞바다의 풍경은 제가 하는 이 JOB이 어떤 의미인가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었습니다. 그때 느꼈던 생각들을 한번 글로 적어볼까 합니다.

 

선박과 항공기의 Captain

항공기의 기장과 선박의 선장은 모두 영어로는 'Captain'입니다. 선박과 마찬가지로 항공기 사고가 났을 때 가장 나중에 기체에서 내리는 사람도 Captain입니다. 승객과 승무원의 생명과 안전을 마지막까지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비행기의 안전 절차와 용어들이 배의 그것에서 비롯한 것들이 많습니다. 부기장을 뜻하는 'first officer' 도 배의 '일등 항해사'에서 비롯한 말입니다. 이처럼 배와 비행기는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선원법 제10조(재선의무)

선장은 화물을 싣거나 여객이 타기 시작할 때부터 화물을 모두 부리거나 여객이 다 내릴 때까지 선박을 떠나서는 아니 된다. 다만, 기상 이상 등 특히 선박을 떠나서는 아니 되는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선장이 자신의 직무를 대행할 사람을 직원 중에서 지정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대한민국 항공안전법 제 62조(기장의 권한 등)

④ 기장은 운항 중 그 항공기에 위난이 발생하였을 때에는 여객을 구조하고, 지상 또는 수상(水上)에 있는 사람이나 물건에 대한 위난 방지에 필요한 수단을 마련하여야 하며, 여객과 그밖에 항공기에 있는 사람을 그 항공기에서 나가게 한 후가 아니면 항공기를 떠나서는 아니 된다.

 

Emergency Procedure - "EVACUATION"

항공기 조종사는 6개월에 한 번씩, 1년에 2번 비정상 절차에 대한 교육과 평가를 받습니다. 여러 상황들을 평가받는데 그중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것이 "Evacuation"입니다. '비상 탈출'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항공기는 실내가 좁고 Door가 여압을 위해 단단히 고정되어 있으며 개수도 몇 개 없습니다. 그래서 사고가 났을 때 1분 1초가 중요합니다. 빠른 판단으로 비상탈출을 적절하게 지시하지 않으면 큰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PIC(Pilot in Command, 최종 결정권을 가진 기장)가 조종실에 있는 Evacuation alarm을 울리면 모든 승무원들이 비상탈출을 이행하도록 훈련과 평가를 받습니다. 

 

세월호 사고를 보고 비행기 조종사들은 세월호 승무원들의 비상 대응 절차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조종사들은 너무나 당연히 비상 절차 교육을 받고 거의 달달 외다시피 절차 수행을 하게 됩니다. 기장, 부기장은 각자 할 일을 기계적으로 수행하게 됩니다. 기장은 기내 방송으로 승무원들에게 비상탈출 준비를 명령하고 부기장은 QRH(Quick Reference Handbook)를 꺼내서 엔진을 끄고 비상전원을 연결하고 관제탑과 교신을 합니다. 그동안 기장은 상황 파악을 하고 기체가 어떤 상황인지 불이 났다면 어느 쪽 엔진에 났는지를 판단해 탈출 방향을 정하고 최종적으로 탈출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탈출 명령이 내려지면 정해진 위치에서 대기 중인 승무원들이 각자 Door를 수동으로 열고 Slide(탈출용 미끄럼틀)를 펼쳐 승객들을 차례로 내보내게 됩니다. 이 과정이 몇 분 만에 진행됩니다. 

 

2013년 아시아나 214편 추락사고와 2014년 세월호 침몰

출처 : 조선일보 기사 

2013년 7월 7일, 조종사의 착륙 중 속도 처리 실패 등의 과실로 인해 추락한 아시아나 214편 샌프란시스코 공항 추락사고를 기억하시나요? 이 사고로 동체가 두 동강이 나고 불길에 휩싸였지만 사망자가 3명밖에 나지 않은 것은 승무원들이 비상탈출 절차를 아주 빠르게 했기 때문입니다. 

 

비행기 승무원들은 잘하고 선박 승무원들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훈련, 그리고 평가 체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즉,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조종사가 잘못하여 사고가 난 것을 쉴드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나마 비상 탈출 훈련을 주기적으로 받았기 때문에 큰 인명 피해는 막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세월호의 선원들

7년 전, 2014년 4월 16일 아침에 뉴스로 세월호의 침몰 사고를 실시간으로 봤던 기억이 납니다. 아직 선체가 가라앉기 전이었고 침몰해 가는 배를 방송국 헬기에서 촬영하며 보여주던 장면이었습니다. 배가 완전히 침몰할 때까지 1시간 35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박형주 가천대 교수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준석 선장이 세월호의 위험을 감지한 8시 50분에 퇴선 명령을 했다면 5분 안에 전원 탈출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1시간 후인 9시 50분에 퇴선명령을 했다고 하더라도 (4층까지 침수가 진행된 상황이었지만) 7분 내에 전원 탈출이 가능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당시 세월호 선원들은 어땠을까요. 이준석 선장은 사고 설명을 듣고 멍하니 조타실 뒤편에 쪼그려 앉았다고 합니다. 기관장은 조타실을 뛰쳐나가 버렸습니다. 1등, 2등 항해사들은 선장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지시도 내리지 못했습니다. 3등 항해사는 우느라 사고 경위를 선장에게 설명도 못했습니다. 상황이 어떤지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던 여객부 승무원은 안내 방송을 통해 "승객 여러분은 현재 위치에서 움직이지 마시고 가만히 계시길 바랍니다."는 말을 무려 13번이나 반복했습니다. 이 방송은 피해자들의 탈출 의지를 꺾어놓았습니다.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았던 선원들, 그 들 모두는 결국 모두 구조되었습니다. 도망쳤던 것입니다. 

 

'안전', 최후의 순간까지 포기할 수 없는

안전의 책임자와 실무자는 결국 위기의 순간에서 평가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조종사들 사이에선 '조종사는 잘해야 중간이고, 무슨 일이 생기면 결국 책임을 지는 것은 기장'이란 이야기가 있습니다. 날씨가 나쁘거나 비행기가 결함이 있거나 승객이 아프거나 트래픽이 많거나 등등,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과 대처를 해야만 합니다. 안 좋은 상황이 일단 발생하게 되면, 사후에 판단했을 때 더 좋은 선택지가 있었을 경우 비난받게 됩니다. 또 사후에 규정을 엄밀히 따져 규정과 어긋나는 점이 발견되면 그 부분도 감당해야 합니다. 

 

외국인 기장님과 비행을 했을 때 그가 했던 농담이 있습니다. 기장의 견장에 있는 네 줄과 부기장의 세줄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부기장의 세줄은 "IT'S / YOUR / FAULT" 기장의 네 줄은 "IT'S / ALL /  MY / FAULT"라는 것이었습니다. 세 단어와 네 단어를 이용한 영어 개그이긴 한데, 저는 그 개그가 좋았습니다.

선박의 선장도 4줄의 견장을 하고 있습니다. 

 

내 실수가 누군가의 목숨과 행복을 뺏어간다면?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조종사로서 이 질문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합니다. 진도 앞바다의 붉은 섬광탄을 보며 제가 떠올렸던 질문이었습니다. 이것이 '안전'을 늘 생각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안타깝게 세상을 등진 그분들의 명복을 진심으로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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