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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항공사고수사대

제주항공101편, 그날의 승객들이 이명,구토,두통을 호소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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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3일 06:40 경 김포공항을 출발하여 제주공항에 도착 예정이었던 제주항공 101편.(B737-800)

상승 중 갑자기 조종석에 객실기압경보음이 울립니다. 승객들은 이명, 구토, 두통을 호소하며 몇 명은 코피가 나는 등 객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조종사들은 고도를 강하하고 객실에 산소마스크를 작동시켰습니다. 07:14경 조종사들은 비상상황을 선포하고 07:36경 제주 공항에 착륙하였습니다.

 

HL8049의 비행 경위 (출처:항공기준사고 조사보고서)

높은 고도에서도 객실 내 적당한 공기 밀도를 제공해 주는 여압장치

높은 고도는 공기 밀도가 낮습니다. 항공기가 승객을 태우고 높은 고도에서 운항을 하려면 '여압(Pressurization)'이 필요합니다. 여압은 압축된 공기를 객실 안에 주입시켜 객실 내 기압을 지상의 기압과 비슷하게 만들어 주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무턱대고 많이 주입해서도 안됩니다. 비행기 동체 안팎의 기압 차가 너무 커지면, 항공기 골격이 기압차를 이기지 못하고 찌그러지거나 풍선처럼 터질 수 있기 때문에 지상의 기압과 똑같이 하기보다는 적당한 기압을 유지합니다. 이것을 객실내기압고도(Cabin Altitude)라고 하는데, Cabin Altitude가 6000 feet 라면, 객실 내의 기압이 6000 feet 산 위의 공기 밀도와 비슷한 정도 수준이라는 의미입니다. 여객기들이 지상에 있을 때는 객실내기압고도가 0 feet이며, 이륙하여 상승하면서 서서히 고도가 올라가 순항고도에 이르면 객실내기압고도는 항공기에 따라 5000~6000 feet로 유지됩니다. 즉 비행기 여행을 떠나실 때 6200 feet 높이 정도 되는 지리산 정상에 계신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정도라면 크게 불편하지 않고 고산증 등의 증상도 없습니다.

 

제주항공 101편의 사건 개요

'항공철도조사위원회'가 작성한 사고보고서에 의하면 이 사건 개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제주항공 101편의 조종사들은 비행 중 여압을 하는 장치인 '엔진 블리드 스위치(Engine Bleed Switch)'가 꺼져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항공기 시동 전, 이륙 전, 상승 중에 이 스위치가 켜져 있는 것을 확인하는 절차가 3번이나 있는데도 불구하고 스위치가 꺼져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비행기가 13,317 feet를 지나면서 객실기압고도 경고음이 발생했고, 기장은 이 때서야 엔진 블리드 스위치가 꺼져있는 것을 알고 스위치를 켜고 10,000 feet로 즉시 강하하였습니다. 

 

10,000 feet에 도달하자 기장은 부기장에게 객실 고도 경고 비상절차를 수행하도록 지시하였고, 부기장은 비상절차에 따라 객실여압 조절 모드를 수동 위치로 두고, 공기배출밸브(Out flow valve)를 닫았습니다. 

잠시 후, 기내에 압축 공기가 주입되면서 객실기압고도 경고음이 꺼졌고, 조종사들은 정상 상황으로 돌아왔다고 판단하여 다시 상승을 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조종사들은 비상절차로 수행한 스위치들을 제대로 돌려놓지 않았습니다.

 

비행기가 18,966 feet까지 상승하는 중에, 객실 승무원으로부터 승객들이 귀가 많이 아프다는 연락을 받고, 조종사는 다시 10,000 feet로 강하합니다. 공기배출밸브를 닫았기 때문에 비행기가 너무 빠르게 압축공기가 주입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조종사들은 여기서 오판을 합니다. 반대로 객실여압이 떨어져 발생한 현상이라고 오해한 것입니다.

 

이때부터 조종사들은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QRH(Quick Reference Handbook)를 참고하여 비상절차를 다시 수행합니다. 산소마스크를 착용하고 공기배출밸브가 닫혀있는 것을 확인하였으나, 승객들이 귀가 너무 아파 고통을 호소한다는 연락을 재차 받게 됩니다. 

 

다시 10,000 feet에 도달했을 때 객실기압고도계가 갑자기 37000 feet를 지시하는 것을 보고, 기장은 승객용 비상용 산소마스크를 수동으로 작동시켰고, 8000 feet까지 더 내려갔습니다. 

 

기장은 지상에 있는 정비사와 연락을 취합니다. 정비사는 공기배출밸브가 닫혀있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열려있어야 한다고 조언을 해줍니다. 조종사는 정비사의 조언에 따라 공기배출밸브를 열었고, 제주공항에 접근해 무사히 착륙하였습니다.

 

여압장치(Pressurization)와 공기배출밸브(Out Flow Valve)

여압장치가 객실 내에 압축공기를 주입하는 장치라면 공기 배출밸브는 객실 내의 공기를 빼는 밸브입니다. 즉 항공기는 공기를 주입하면서 다른 쪽으로는 동시에 공기를 빼기도 합니다. 이 둘의 밸런스를 유지해 객실 내의 공기를 적정한 압력으로 조절합니다. 원래는 컴퓨터가 알아서 둘을 조절하여 객실 내 기압을 적절하게 유지합니다. 

 

문제는 제주항공 101편 조종사들은 비상절차를 진행하면서 여압 조절을 수동모드로 전환했습니다. 이제는 컴퓨터가 조절해 주는 대신 조종사들이 수동으로 이것을 조절해 주어야 합니다. 기장이 '엔진 블리드 스위치'를 켰으므로 사실 항공기는 이 시점에서 정상상태로 돌아왔습니다. 항공기는 이상이 없었고, 그저 조종사들이 조작을 잘못했던 것이었으므로 사실 비상절차는 불필요했던 것이었습니다. 비상 절차를 했다고 하더라도, 상황이 안정되면 다시 정상 모드로 전환해야 했지만, 조종사들은 정비사의 조언을 들을 때까지 이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여압 상실 시 비상절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객실여압계통 비상절차(출처: 항공기 준사고 조사 보고서)

 

공기배출밸브를 완전히 닫아버리고, 여압장치를 작동시킵니다. 그러면 비행기 안은 빠져나갈 구멍을 막아버리고 공기를 계속 주입시키는 풍선 같은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공기가 희박했었다면, 이번에는 공기가 너무 많이 주입되는 상황을 만들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승객들이 고통스러워했던 것은 이런 공기 압력 변화가 너무 급진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표현하자면, 고산지대에 있던 사람이 한순간에 바다 깊숙한 심해로 다이빙해버린 것입니다.

 

조종사들은 왜 급강하(Emergency Descent)를 해야만 했을까? 

아마 많은 조종사들이 이 사건 개요를 읽게 된다면 의문을 가질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공기배출밸브를 닫고 비행기에 여압을 과하게 했는데도, 왜 객실기압고도계가 37000 feet를 지시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객실기압고도계가 37000feet라는 것은 객실내 승객들이 공기가 매우 희박한 성층권 정도의 환경에 노출된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이런 고도에서는 산소마스크 없이는 곧 정신을 잃게됩니다. 객실기압고도계가 고장이 났던 걸까요? 도대체 왜 이런 오류가 났던 걸까요?

 

객실기압고도계 지시 상태(출처: 항공기 준사고 조사 보고서)

해당 비행기 HL8049 737-800 에는 위의 사진과 같은 객실기압고도계가 장착되어 있었습니다. 디지털 계기가 아니라 아날로그 형태의 계기입니다. 정상 지시할 때는 시계방향으로 객실기압고도(Cabin Altitude)를 지시하지만, 이 사건의 경우에는 여압을 과하게 하여 지침이 0 feet를 지나 마이너스의 영역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반시계 방향으로 돈 것입니다. 즉 지상보다 더 낮은 고도, 지하나 바닷속의 압력을 가리키게 해야 했지만 아날로그 고도계의 한계상 그렇지 못하고 37000 feet로 가리키게 된 것입니다. 

 

해당 조종사들은 이런 계기의 특성을 알지 못했고, 지속적인 계기 모니터링을 한 것도 아니어서 지침이 반시계방향으로 돌아가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어느 순간 이 계기를 봤더니 37000 feet를 가르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FCOM 등의 매뉴얼에도 이런 계기의 특성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합니다. 조종사들은 객실기압고도가 37000 feet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것입니다. 

 

사고조사위원회의 분석

항공/철도 사고 조사위원회는 이 준사고의 원인을 조종사들이 체크리스트 수행을 제대로 하지 않은 점과 객실여압 계통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지적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주항공에 교육과 훈련 보완을 지시하고, 제작사인 보잉사에도 매뉴얼을 수정하거나, 객실기압고도계의 보완을 권고하였습니다. 


조종사에게 체크리스트 수행은 정말 중요합니다. 절차에 맞게 정확히 수행해야 합니다. 2 Pilot Concept에 맞춰 PF(Pilot Flying)와 PM(Pilot Monitoring)이 서로 상호 확인해야 합니다. 이것을 챌린지(challenge)와 리스펀스(response)라고 하는데, 해당 항공사의 체크리스트의 경우에는 engine bleed를 부기장(F/O)과 PM이 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제가 타는 에어버스 기종과 항공사는 부기장 또는 PM이 챌린지하면 기장 또는 PF가 리스펀스를 하게 되어있는데, 절차가 조금 상이하네요. 그렇다 하더라도, 기장 부기장이 해당 항목을 같이 체크하고 넘어가는 것이 체크리스트의 기본입니다. 

 

당시 제주항공 B737 체크리스트(출처: 항공기 준사고 조사 보고서)

또 제가 타는 비행기는 객실내기압고도(Cabin Altitude)가 디지털로 디스플레이 화면에 표시되는데, 737NG 시리즈는 아날로그 방식이라는 점도 새로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사고보고서를 읽고 어떻게 cabin altitude가 37000 feet 가 되지? 하면서 읽다가 아날로그 계기의 모습을 보고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네요.

 

조종사로서 다른 조종사분의 사고나 준사고의 보고서에 대해서 쓰는 것이 조심스러워 최대한 사고조사 보고서에 기초해 추측이나 사견을 배제하고 보고서 내에 기재된 내용만을 썼습니다. 사고조사 보고서의 목적은 비난이나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유사 사고 및 준사고의 재발을 방지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글 또한 이런 목적으로 썼다는 점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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