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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아는 척 해보자

비행기도 충돌사고가 나나요? Feat. 위버링겐 공중 충돌 사고

우리나라의 총 차량 대수는 몇 대나 될까요? 2020년 기준 2천3백만 대 가량 된다고 합니다.(23,743,391대) 이렇게 차가 많은 만큼 하루에도 많은 차량 추돌사고가 일어납니다. 한국교통연구원이 2021년 4월 7일 발표한 연구에 의하면 2019년 기준 연간 대략 129만 건가량의 교통사고가 난다고 합니다. 그에 비해 대한민국의 민간항공사의 비행기 대수는 2019년 기준으로 400대에 조금 못 미치는 398대, 이밖에 항공사 이외의 민간항공기까지 모두 포함하면 774대입니다.

 

하지만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비행기 사고는 정확한 통계는 모르겠으나 비율로 따지면 자동차보다 현저히 낮을 것입니다. 특히 항로상에서 비행기끼리 충돌하는 사고는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많은 이유가 있겠으나 가장 큰 이유는 비행기는 관제사의 관제지시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관제사는 지상에 위치한 레이더를 통해 비행기의 위치 정보를 실시간으로 얻고 적절하게 항로 분리와 고도 분리를 지시합니다. 그리고 비행기도 TCAS 또는 ACAS라고 불리는 공중 충돌 방지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 TCAS : Traffic alert and Collision Avoidance System, 미 연방 항공청 (FAA)에서 사용하는 용어 
▲ ACAS : Airborne Collison Avoidance System , UN 산하 국제 민간항공기구(ICAO)에서 사용하는 용어

TCAS/ACAS는 비행기들이 서로 충돌 위험이 있을 경우 위험을 알려주고 회피 기동을 할 수 있게 끔 도와주는 장치입니다.  

 

비행기는 어떻게 충돌을 회피할까?

급하게 방향을 전환하여 (Steep turn) 항공기가 아슬아슬하게 충돌을 피하는 장면. 멋지지만 영화적 허구이다.

 

영화에서도 비행기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조종사로서 비행기 등장 신을 보면 눈여겨보는 편입니다.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고증이 잘 되는 편이지만 가끔씩 이상한 점들도 보이곤 합니다. 위의 영화에서도 비행기가 충돌할 뻔한 위기의 순간에서 각각의 비행기들이 좌우로 흩어지며 아슬아슬하게 빗겨 나갑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충돌의 위기에서 TCAS는 좌우로 피할 것을 조종사에게 알려주지 않습니다. 충돌 회피의 기본은 고도 분리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TCAS는 한쪽은 상승, 반대쪽은 하강을 지시합니다. 조종사들이 정기적으로 Simulator 훈련을 받을 때도 TCAS가 지시하는 상승 또는 하강하는 훈련을 합니다. 좌우로 방향 전환하여 경로를 바꾸지 않는 이유는 비행기의 선회 반경 때문입니다. 비행기는 빠른 속도로 전진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급하게 꺾는다 하더라도 방향 전환이 순식간에 일어날 수 없습니다. 

 

TCAS는 단계별로 TA와 RA로 나뉜다.

RA 와 TA 범위

TA는 Traffic이 접근하고 있음을 조종사에게 알려주는 단계로 Traffic이 6km 이내, 충돌 예상 40초 전에 "Traffic! Traffic!" 하는 음성 알림을 줍니다. 조종사는 사방을 경계하며 항적의 위치와 방향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RA는 Traffic이 더 접근하여 4km 이내, 충돌 예상 시간이 25초 이내일 경우 TCAS가 회피기동을 조종사에게 지시합니다. TCAS가 계산을 통해 한쪽의 비행기에는 상승을 지시하고 다른 한쪽에는 하강을 지시합니다. 이 회피 기동에서 중요한 점은 TCAS가 알려주는 대로 정확히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조종사가 자의적인 판단으로 상승 또는 하강을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음성 경고 메시지로 "Climb! Climb!" 또는 "Descend! Descend!" 같은 경고음이 나오면서 조종석 앞에 위치한 디스플레이 창인 PFD(Primary Flight Display)에 상승 또는 하강을 지시하는 그림이 나오고 조종사는 여기에 맞춰서 조종간을 조작하여야 합니다. 조종사가 조종간을 어떤 양만큼 조작할지를 비주얼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관제사의 지시와 TCAS 지시가 상충될 경우는?

충돌의 위기 상황에서 관제사는 상승을 지시하고, TCAS는 하강을 지시할 경우, 조종사는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여야 할까요? 실제로 이런 상황이 발생하여 비극적인 공중 충돌사고가 있었습니다.  관제사가 상승을 지시하였고, TCAS는 하강을 지시하는 애매한 상황에서 조종사가 관제사의 지시를 따르면서 공중 충돌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2002년 7월 1일 독일 남부 위버링겐 상공에서 발생한 러시아 바시키르 항공 2937편(투폴레프 Tu-154)과 DHL 화물기 611편(보잉 757)의 공중충돌 사고입니다.

 

조종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TCAS RA 지시를 따라야 합니다. 

 

이 사고 이전에는 ICAO의 규정에는 관제사와 TCAS의 지시가 상충될 경우 어느 쪽에 따라야 하는지 명시된 사항이 없었습니다. 반면 미 연방 항공청인 FAA에는 TCAS 지시를 우선하고 관제사에게 후 보고 하도록 규정이 명확히 있었습니다. 미국 국적기인 DHL 화물기는 충실히 TCAS 지시에 따랐으나, 아쉽게도 러시아 바시키르 항공 2937편은 관제사의 지시에 따랐습니다. 당시 대부분이 러시아 공군 출신이었던 러시아 조종사들은 이런 상황에서 무조건 관제사의 지시에 따랐다고 합니다. 러시아 항공사 바시키르 항공의 규정에도 관제사의 지시를 따르는 것은 올바른 절차였고, 바시키르 항공의 다른 조종사들도 사후의 인터뷰에서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같은 행동을 할 것이라고 답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사고 이후 같은 사고를 반복하지 않도록 ICAO는 TCAS의 지시를 최우선 하는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고로 두기체의 승객과 승무원 71명이 전원 사망해 버린 뒤였습니다. 

 

DHL 화물기와 바시키르 2937편의 잔해 (출처: 나무위키)


항공기의 역사와 항공법은 피로 쓰인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 안타깝게도 많은 규정들이 비극적인 사고 후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바꿔 생각해보면 그만큼 규정은 잘 지켜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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