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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아는 척 해보자

항공기의 위치를 아는 방법(2). GNSS와 GPS. (Feat. 대한항공 007편)

항법(Navigation)의 기본은 '나의 위치'를 정확히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나의 위치를 기준으로 목적지가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떨어졌는지를 알아야 낯선 곳을 찾아갈 수 있겠죠? 항법의 여러 가지 방법 중 가장 좋은 방법은 위성 신호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흔히들 GPS라고 부르는 이 기술은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위성측위시스템이라고 번역되는 GNSS(Global Navigation Satellite System)가 정식 명칭입니다.  

 

GNSS의 미국 방식, GPS

위성 신호를 이용하여 관측과 항법을 하는 것을 GNSS라고 합니다. GNSS에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는데 미국의 GPS가 가장 대표적이고, 그밖에 러시아의 GLONASS, EU의 GALILEO, 중국의 북두(BAIDOU) 등이 있습니다. 

 

GNSS의 종류

GNSS가 사용되기 전 항공기는 어떻게 항법을 했을까?

민간 항공기들이 처음부터 위성신호를 사용한 항법을 한 것은 아닙니다. 위성 신호가 민간에 개방되기 이전의 항공기들은 관성 항법 시스템(INS)이라고 불리는 항공기에 내장된 항법장치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지상에 VOR/DME 라는 무선 전파 시설을 설치하여 항공기의 위치를 보정하면서 내비게이션을 하였습니다. 제가 포스팅한 INS에 관련된 글에서 자세한 내용을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 

 

https://freepilot.kr/28

 

항공기의 위치를 아는 방법 (1) feat. IRS와 미적분

비행기와 수학은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오늘은 비행기 속에 숨어있는 수학원리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주의. 수학 있음. 미적분 있음. 조종사가 길을 잃지 않고 목적지까지 비행기를

freepilot.kr

관성항법 시스템은 비행시간이 길어질수록 오차가 누적되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차를 보정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상시설을 지을 수 없는 태평양, 대서양 같은 대양을 횡단하는 비행에서는 오차보정이 어렵습니다. 또, 매 비행마다 초기화를 하는데 시간이 걸리며 한번 오류가 나거나 꺼졌을경우 비행 중에 재시동이 불가능합니다. 정확한 위치정보를 초기값(Initial Value)으로 입력해 주어야 하는데 비행 중에는 이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GNSS는 이런 단점들이 없습니다. 오차없는 위치 신호를 실시간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민간 항공에 GNSS가 처음 개방된 것은 비교적 늦은 시기인 1983년입니다. 1983년 이전에는 미국 국방성이 GPS 신호를 민간에 개방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대한항공 007편(KE007)의 격추와 GPS의 개방

미 국방성이 GPS신호를 민간에 개방한 것이 대한항공 007편 격추 때문인 것을 아시나요? 

 

1983년 9월 1일, 뉴욕 JFK공항을 출발하여 급유를 위해 알래스카 앵커리지 공항을 경유하고 대한민국 김포 국제공항으로 비행할 예정이었던 대한항공 007편(B747-200)이 소련 영공인 사할린 섬 근처에서 격추된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습니다.

홍콩 카이탁 공항에서 찍힌 사고기의 모습(출처: 나무위키)

 

해당 항공편은 계획된 비행경로에서 북쪽으로 300km이상 벗어난 경로로 비행을 하였고, 이로 인해 소련 영공을 침범하였습니다. 사고 이후 밝혀진 사실은 조종사들이 INS를 켜지 않고 헤딩 모드란 항법을 하였다는 점입니다. 헤딩 모드란 쉽게 말해 나침반을 보고 항법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북태평양의 망망대해를 나침반만 가지고 비행한 것입니다. 왜 조종사들이 INS를 사용하지 않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조종사들이 실수로 INS 초기화를 하지 않았고 이 실수를 숨기기 위해 회항하지 않고 헤딩 모드로 비행을 강행하였다는 추측이 있습니다.) 

 

대한항공 007편의 사고경로. 계획된 경로(점선)보다 북쪽으로 비행했음을 알 수 있다.(출처: 나무위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조종사들은 INS를 사용하지 않았고, 소련의 영공을 침범하였습니다. 그리고 소련의 전투기에 의해 격추당했습니다. 이 사고로 인해 승객과 승무원 269명이 전원 사망하였습니다. 냉전 시대의 가슴아픈 사고입니다만, 조종사의 과실과 함께 당시 항공기 항법 시스템의 한계도 드러난 사고였습니다. 지금같이 민항기에 GPS가 보편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시기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였으니 말입니다. 

 

미국은 이 사고 이후 민간 항공기에 GPS 위성신호를 개방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적대국가, 세력이 악용할 것을 염려해 GPS 신호를 완벽하게 개방한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오차와 함께 개방하였습니다. 2000년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이 랜덤 오차까지 없애면서 민간에서도 오차 없이 GPS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이 사고 이후 다음해인 1984년, 대한항공은 보잉사의 컨설팅을 받아 민간항공기임을 명확히 식별할 수 있게끔 기체 도장을 현재의 하늘색 도장으로 바꾸게 됩니다.  이 사고가 여러 가지를 변화하게 만들었네요.

GPS도 만능은 아니다.

GPS가 정확한 항공기 포지션 정보를 제공하지만 미국 당국이 신호를 중지할 경우나 오차를 크게 설정할 경우 사용을 할 수가 없습니다. 2011년 3월 5일에는 북한의 GPS 교란 신호에 의해 핸드폰 시계가 안맞고 통화가 잘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북한과의 정세가 좋지 않았던 2010년대 초반에는 비행 중에 'GPS Accuracy down grade' 에러 메시지를 비행 중 자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비행기가 GPS만으로 항법을 할 수 없는 이유이고, 각국이 GPS 의존에서 벗어나 고유한 GNSS 체계를 구축하려하는 이유입니다.  현대의 민항기는 GPS에만 의존하지 않고 여러 source에서 얻은 위치정보들을 종합하여 항공기의 위치를 산출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위성신호는 필수적입니다. 단 한시간만이라도 위성 신호가 먹통이 된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정확히 예상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꽤 큰 혼란이 오지 않을까요? 그만큼 지금의 우리는 위성신호, 특히 미국의 GPS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GPS가 민간에 개방하게 된 첫 계기가 대한민국의 국적기인 대한항공의 가슴아픈 사고라는 점이 놀랍지 않으셨나요? 비극적인 비행기 사고가 GPS를 민간에 공개하는 계기가 되면서 훗날 GPS를 이용한 민간 기술에는 눈부신 발전과 영역 확장이 있었습니다. 미래의 항공기 항법은 어떤 방식이 될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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