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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아는 척 해보자

기장이 비행하면 부기장은 옆에서 뭐하나요? feat.대한항공 801 괌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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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사의 견장, 3줄은 부기장, 4줄은 기장이다.

 

조종사들의 복장을 보면 견장이 있습니다. 보통 기장(Captain)은 4줄, 부기장(First officer)은 3줄입니다. 1줄과 2줄은 잘 보시지 못하셨겠지만, 훈련 조종생들이 자가용조종사(Private Pilot) 면허를 따면 1줄, 사업용조종사(Commertial Pilot) 면허를 따면 2줄을 답니다. 조종 훈련을 받을 때 1줄, 2줄을 따며 교관이 어깨에 견장을 달아줄 때가 생각이 나네요. 마치 군대에서 이등병,일병으로 진급하는 느낌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기본적으로 여객기, 민항기는 두명이 운항합니다. 보잉, 에어버스 같은 제작사는 항공기의 제작단계에서부터 두명이 운용할 수 있게끔 디자인을 합니다. 이를 TWO PILOT CONCEPT 이라고 합니다. 적어도 2명 이상의 조종사가 운용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 두명의 조종사가 비행의 각 단계에서 어떤 작업(JOB)들을 할 지를 절차화해 놓았습니다. 한 쪽은 PF JOB(Pilot-Flying) , 다른 한쪽은 PM JOB(Pilot-Monitoring) 으로 두가지 JOB이 있습니다. 조종실에 들어가면 두명의 조종사는 기장, 부기장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PF, PM으로 구분됩니다. 말 그대로 PF는 비행을 하고, PM은 모니터링(감시)을 합니다. 이 두 JOB이 어느쪽이 더 중요하고, 어느쪽은 덜 중요하고 이런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난번 글에 말씀드렸듯이 조종사는 Controller 보다는 Decision Maker 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비행기 조종을 하는 것은 조종사가 하는 작업들 중 일부에 해당합니다. (밑에 첨부된 글을 보시면 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https://freepilot.kr/5

 

오토가 다해주는데 조종사는 뭐해?

요즘 주변에서도 자율주행차를 심심치않게 볼 수 있습니다. 자동차의 자율주행모드를 '오토파일럿'이라고 부르는 것을 처음 들었을 때 개인적으로는 조금 이상하다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자동

freepilot.kr

기장만 PF를 하고, 부기장은 PM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기장과 부기장은 이 중 하나씩을 골라 일을 하고, 통상 번갈아 가면서 비행을 합니다. 김포-제주-김포의 왕복 비행을 할 경우 갈때는 기장이 PF를 하고 돌아올때는 부기장이 PF를 하는 식입니다. 

PF JOB : 비행기를 수동 조작하거나, 오토파일럿이 작동할 때는 제대로 작동하는지 감시한다. 

PM JOB : 관제사 등과의 Radio communication, 시스템 설정, 모드 설정, 항공기의 상태 모니터링, PF가 지시하는 작업수행, PF가 하는 조작을 모니터링하고 수정하여 줌 

중요한 것은 두 조종사가 표준화된 의사소통을 통해 cross-check 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인간은 실수를 하게 마련이므로 서로를 보완해 주는 백업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처럼 항공기는 안전을 위해 복수의 백업들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엔진도 두개, 유압시스템도 두개, 전기시스템도 두개, 조종사도 두명, 오토파일럿 시스템도 두개, 연료 탱크와 펌프시스템도 여러개, 등등입니다. 비행기에 따라 각 시스템들이 두 개 이상일 경우는 있지만 단 하나의 시스템만 장착된 비행기는 없습니다. 그만큼 백업은 중요합니다. 자동차처럼 뭔가가 고장나면 갓길에 멈추고 수리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니까요.

 

기장과 부기장은 진짜 식사할 때도 다른 메뉴를 먹나요?

 

기장과 부기장이 다른 메뉴의 식사를 하고 있다.

 

기장과 부기장이 식사 메뉴를 다르게 해서 먹는다는 것은 많이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진짜로 그럴까요? 네. 비행할 때 조종사들의 메뉴는 항상 다르게 먹습니다. crew meal 이라고 해서 두 종류가 나오는데 기장과 부기장이 각각 다른 종류를 먹습니다. 같은 종류의 식사를 했다가 두 명의 조종사가 동시에 식중독에 걸려버리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대한항공 801편 사고와 기장과 부기장의 POWER DISTANCE 

1997년 8월 6일 서울 김포공항에서 출발해 미국령 괌에 도착예정이던 대한항공 801편 비행기가 괌에 접근 중 추락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습니다. 승객 254명 중 228명이 사망한 안타까운 사고였습니다. 당시 괌 공항에는 시정이 좋지 않을 때 항공기의 접근경로를 조종사에게 알려주는 계기인 Glide Slope(GS)이라는 장치가 고장이 난 상황이었습니다. 운이 나쁘게도, 대한항공 801편이 괌 공항에 접근할 때 괌 공항은 짙은 안개로 인해 시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GS가 고장이 났다고 하더라도 다른 계기를 이용해 시정이 나쁜 공항에 착륙할 방법은 있었습니다. 기장과 부기장은 이 모든 상황에 대해서 착륙 준비 전에 알고 있었습니다. 착륙 준비 전 기장과 부기장은 '어프로치 브리핑(Approach Briefing)'을 하는데, (통상 착륙 40분~1시간전에 합니다.) 이 때 기장은 괌 공항의 GS고장과 시정이 좋지 않은 기상 조건을 언급했습니다. 그래서 VOR이라고하는 다른 종류의 기계를 활용해 착륙을 시도할 것을 계획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사고 후 발견된 블랙박스 조종실 음성기록장치에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괌 인근에 추락한 대한항공 801편의 잔해

 

하지만 당시 PF를 담당하던 기장은 피곤함 때문이었는지 착각을 일으켰습니다. 지상의 GS가 고장났지만, 신호를 보내고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 신호는 잘못된 신호였습니다. GS가 고장났을 때는 이 신호가 잡힌다 하더라도 무시하고 정상절차를 따라야 했지만 기장은 이 신호에 신경을 쓰느라 정상 착륙 절차에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사고 조사를 맡은 항공당국은 기장이 공항 3마일 앞에 있는 VOR장치를 활주로로 착각했다고 추정합니다. 대부분의 공항에서 VOR이 활주로 근처에 위치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괌 공항은 3마일이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활주로보다 훨씬 높은 고도에(니미츠힐)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기장의 착각으로 인해 사고기는 괌 공항 인근에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비행기가 추락하기 전에 조종석에 타고 있던 부기장과 항공기관사가 기장의 실수를 알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시정이 좋지 않을 경우 계기비행 접근 절차는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괌 공항의 VOR 계기접근 절차
빨간색 X가 사고지점이다.

 

접근을 시작하면 비행기는 계단식으로 내려갑니다. 지상의 장애물과의 안전거리를 확보하면서 점점 활주로에 다가가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활주로 주변에 충분히 접근하고 고도가 낮아진 상태가 되면 조종사는 육안으로 활주로를 찾습니다.

활주로를 식별하면 활주로에 착륙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차트에 'M'자로 표시된 'Missed aproach point' 지점 까지 갔을 때도 활주로를 보지 못했다면 착륙포기를 하고 복행(GO Around)을 해야합니다.

 

부기장은 해당 고도에 도달했을 때 활주로가 보이지 않자, 무언가가 잘못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이 때 부기장은 기장에게 "Go around!" 라는 standard Call-out을 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블랙박스에 저장된 부기장의 말은 이랬습니다.

1541:42 (충돌 44초 전) GPWS : One Thousand (고도 천피트 경고음)

1541:46 (충돌 40초 전) 부기장 : "안보이잖아?"

- 블랙박스 기록 중 

단호하고 명확한 "Go Around!" 라는 스탠다드 콜아웃 대신에 부기장은 애매한 표현인 "안보이잖아?"라고 혼잣말 하듯 말하였습니다. 충돌 40초 전은 Go around를 했다면 충돌을 피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이었습니다. 부기장은 왜그랬을까요? 부기장은 기장이 잘못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대신에 혼잣말하듯 말하여 기장이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깨닫기를 바랬습니다. 완곡한 표현으로 소극적으로 전달했던 것입니다. 조종실 내에서 스탠다드 콜아웃을 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규정위반입니다. 기장의 권위와 이런 잘못된 문화가 사고를 막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사고는 말콤 글래드웰이 쓴 '아웃라이어'라는 베스트 셀러에도 소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저자인 말콤 글래드웰은 이 사고의 배경에 기장과 부기장간의 권위적인 문화가 있다는 견해를 밝히면서 한국의 유교적인 문화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물론 이 사고 이후에 조종실 내에서의 권위적인 문화는 많이 사라졌습니다. 1997년의 일이니 햇수로 25년전의 일이니까요. 하지만 이 사고는 PF 못지않게 PM의 JOB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려줍니다. 모니터링을 하고 상황인식을 제대로 하여 적극적으로 PF에게 조언했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항공사에서는 CRM(Crew Resource Management) 라는 개념을 도입해 이런 의사소통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교육하고 사고를 방지하고 있습니다. 스탠다드 콜아웃도 이런 개념들 중 하나입니다. 조종실 안에서 임의적이고 생각나는 대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용어를 토씨하나 틀리지 않게 사용해 의사소통 오류(Communication error)를 방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사고가 우리나라의 국적기에서 일어났다는 점은 지금도 참 마음이 아픕니다. 조종사로서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는 행동은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PM의 JOB은 옆 사람의(직장상사일 지도 모를) 잘못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단호하고 명확하게 의사전달을 해야합니다. 그리고 PF는 조언을 언제나 오픈 마인드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고도 1천피트 이하에서는 조종실 내에 어떤 사람이라도 "Go Around" 를 외쳤을 경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복행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후에 상황을 파악합니다. 항공사도 복행을 하는 것을 문제삼지 않습니다. 조종사의 과실도 복행을 했다면 면제가 됩니다. 

 

조종사들에게 있어 '비행을 잘한다' 라는 것은 비행스킬이 뛰어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해진 규정대로 비행하는 것입니다. 저도 늘 비행을 함에 있어 '비행을 잘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절차대로 비행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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